티치아노, 성령 강림, 5.7*2.6m, 1545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2000년 기독교 역사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강림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의 의미를 되새기고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신 것을 감사하고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원하는 성령강림 절기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자 제자들은 여전히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제자들이 이런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서 본격적으로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복음을 증언하고 사도로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을 체험한 사건입니다.
500년 전, 베네치아를 대표한 화가 티치아노가 성령강림의 순간을 그렸습니다. 성령을 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세례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셨다는 기록에 따라 비둘기로 표현합니다. 성령으로부터 빛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 빛은 직선입니다. 굴절되지 않습니다. 강렬하게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 빛이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으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지상에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습니다. 팔을 올려서 성령의 강림을 더 확실하게 영접하는 제자도 있고, 자기들끼리 얼굴을 보고서 이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놀라면서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왼쪽 맨 끝에 머리가 벗겨진 사람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 성경을 보면서 주님의 영을 영접합니다.
맨 앞에 반은 무릎 꿇고 가장 역동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베드로일 것입니다. 오른손에는 열쇠를 쥐고 있고, 왼쪽 허리띠에는 칼을 차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체포될 때 베드로가 흥분해서 대제사장 종의 귀를 베었다는 이야기에서 베드로를 상징하는 부속품(Attribute)은 칼이나 열쇠가 되었습니다.초대교회는 특히 여성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티치아노도 여성들을 가운데에 놓고 그렸습니다. 여성들은 하늘을 우러르면서 눈물 가득한 감격으로 성령을 맞이하고, 모두 손을 앞으로 모아서 간절함과 진정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왼쪽에 있는 여성은 고개를 조금 숙인 아주 다소곳한 모습으로 성령을 깊이 받아들입니다. 오른쪽 붉은 겉옷의 남성은 이런 여성들을 좀 신기한 듯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성령강림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을 통해서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 부재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젠 예수님이 눈에 안 보여도, 만날 수 없어도 이 땅에 제자들 혼자 동그마니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언제 어디서나 함께하시기 때문에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 초대교회는 예수님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었고, 오히려 더 뜨거운 열정과 사명감을 가지고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교회는 생동감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고, 크게 약해지거나 존재 자체가 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성령강림은 교회를 세우는 기초였으며, 여전히 성령은 교회를 지속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생명입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주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령강림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가장 확실한 징표이며,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게 하는 믿음의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령 위에 서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성령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ㅡ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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