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김흥순. 4월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ree610 2024. 4. 8. 06:47

김흥순 ㅡ 4월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 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 것들.

미치고 싶었다.
사월(四月)이 오면
산천(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사월(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조국(祖國)에도
어느 머언 심저(心底) ,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사월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동학(東學)의 함성,
광화문(光化門)서 목 터진 사월의 승리(勝利)여.

강산(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향락(享樂)의 불야성(不夜城)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한강연안(漢江沿岸)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사월은 일어서는 달.


* 껍데기는 가라’ ‘4월은 갈아엎는 달’이라 격렬한 시를 썼던 신동엽 시인은 왜소한 체구에 병약했다.

시대를 노려보는 매서운 정신으로 김수영 시인과 함께 한국 민중문학의 포문을 열었다.

그의 시는 1960년대에 주로 발표됐으나 1970, 80년대에 널리 읽혔다. ‘저항’ ‘혁명’ ‘민족’을 노래한 그의 시는 엄혹한 시절 대학가의 정신을 지배했다.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39세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53년.

충청남도 부여(扶餘) 출생.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거쳐 건국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하고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가 당선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1961년부터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재직하면서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허구성을 비판하는 시를 짓기 시작한다.

그 후 아사녀(阿斯女)의 사랑을 그린 장시 《아사녀》,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한 서사시 《금강(錦江)》 등 강렬한 민중의 저항의식을 시화(詩化)하였으며, 시론(詩論)과 시극(詩劇)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시론으로는 《시인정신론(詩人精神論)》 등이 있고, 시극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은 시극동인회에 의해 상연되었다.

특히 4·19혁명의 정신을 되새기며, 인간 본연의 삶을 찾기를 희망한 시 <껍데기는 가라>를 《52인 시집》(1967)에 간행하며 그의 시적 저항정신은 더욱 확고해졌다.

사후 유작을 모아 간행된 《신동엽전집》(1975)이 있다. 주요작품으로 《삼월(三月)》 《발》 《껍데기는 가라》 《주린 땅의 지도원리(指導原理)》 《4월은 갈아 엎는 달》 《우리가 본 하늘》 등이 있고, 유작(遺作)으로 통일의 염원을 기원하는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 등이 있다.

연중 가장 싱싱하고 화사한 시기라 낭만적으로 꽃피워야 됨에도 슬픔이 묻어있는 달이다. 역사에 새겨진 4월은 냉랭하고 잔인하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는 잔인한 4월 -황무지(The Waste Land)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 비로 얼어붙은 뿌리를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