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22년 봄, 한국에는 대선이 있어요. 과연 어떤 분이 차기 대통령으로 뽑힐지 모르겠습니다만, 기대반 우려반입니다. 새 대통령은 21세기의 기후 위기를 헤쳐나가야 하고, 불안정한 한반도에 평화를 보다 완전하게 정착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에게는 제4차 산업혁명에서 한국의 입지를 현저히 개선해야할 중차대한 사명도 있습니다.
아마도 한국의 신임 대통령은 임기 내내 동분서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혼신의 힘을 쏟아, 절체 절명의 국가적 위기를 탈출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지뢰밭을 헤쳐나가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20대 신임 대통령의 책무일 테니까 감히 축하드린다는 말을 꺼내기조차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20대 한국 대통령은 뱃심이 든든해서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한 분이어야 할 것입니다. 위기의 늪을 헤쳐나가면서도 괴로워하기보다는, 생사를 건 모험을 기꺼이 즐기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 지난 12월 초순, 16년간 독일 총리를 연임한 앙겔라 메르켈 씨가 드디어 정계를 은퇴하였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항상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총리 일을 충실히 수행하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임 한국 대통령도 이맛살을 찌푸리는 일 없이, 항상 자신의 책무를 달갑게 여기는 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일찍이 공자도 말씀했지요. 무슨 일이든지 열심히 하는 사람을 당해내기는 어려우나, 그것을 즐기는 사람과는 도무지 상대를 할 수 없다고요. 자신의 공명심을 채우려고 억지로 마음을 내어 나랏일에 애를 쓰는 것도 장하지만요, 처음부터 나랏일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만이야 하겠습니까. 1990년대 초반, 정계에 입문한 이래로 앙겔라 메르켈은 항상 나랏일 하기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그 사람의 복이기도 하였지마는 독일의 홍복(弘福)이 아니었든가 합니다.
3. 제가 무슨 이익을 노리고, 앙겔라 메르켈을 우상화하거나 미화하겠어요. 그이만큼이나 저도 나이를 먹어서,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조금이라도 그런 것을 바라는 마음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30여년 동안 메르켈 씨에 관한 글도 많이 구해서 읽었고, 방송에서 그의 발언도 많이 들어보았습니다. 자연히 그와 독일 현실정치에 관하여, 저는 제법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가 말을 길게 하면 듣는 분이 피곤하여질 테니까요. 메르켈 씨의 좋은 점을 세 가지만 간단히 적어보렵니다. 장차 우리 신임 대통령이 되시는 분께서 타산지석으로 삼으시기를 바랍니다.
4. 첫째가 청렴함입니다. 메르켈 씨는 지금도 자택을 소유하지 않고 세입자로 살고 있습니다. 독일은 대국이라, 총리공관이 무척 화려하지요. 그러나 메르켈 씨는 단 하루도 총리 공관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본래 그러하였듯이 베를린의 평범한 아파트 세입자로서 살고 있어요. 열심히 저축을 하였으면 작은 주택을 하나쯤 구매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분은 재산을 늘리는 데는 관심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치적 쇼가 아니라, 실제 생활이 그러합니다. 워낙 검소한 성품인데다, 단순 소박한 일상생활을 즐기는 분이라서 돈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아요.
5. 둘째는 실용적이고 합리적입니다. 본래 메르켈 씨는 대학에서 과학을 전공한 학자, 구체적으로 말해 물리학자였어요. 언어 능력(러시아어)도 뛰어나지만 수학과 물리를 좋아하는 지식인입니다. 그는 정치도 자연과학자답게 아주 쿨하게 합니다. 격정적이거나 선동적인 구호를 모릅니다. 매사를 조용히, 합리적으로 처리합니다. 민주주의의 힘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며 토론으로 문제를 풀어나갑니다. 결과적으로, 메르켈의 독일은 모든 의사결정이 예측가능하게 되었고 앞뒤가 맞는 정치가 상식으로 자리하게 되었어요.
6. 끝으로,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크고 복잡한 문제라도 합리적으로 조용조용히 처리한 결과, 내외에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었어요. 주자도 말했지요. 세상에는 인의예지(仁義禮智)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요. 그것이 바로 신(信)이란 것입니다. 사람이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앙겔라 메르켈은 신뢰의 힘으로, 16년 동안 독일총리로서 연거푸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였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특히 2008/09년의 신용 위기 때 독일 경제는 하루아침에 폭삭 망할 뻔하였습니다. 그때 독일시민들은 총리의 정치적 능력을 신뢰하였기 때문에, 은행의 도산을 막을 수 있었답니다. 전문가들이 쓴 글을 제가 읽어보니까 정말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더라고요.
신뢰를 토대로, 메르켈은 재임기간 내내 다양한 위기를 극복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방금 말한 신용위기 말고도 그렉시트(그리스 경제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출), 중동난민 위기 등이 또 있었어요.
7. 메르켈 씨가 모든 일을 다 잘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늘날 독일은 통독 후유증으로 여전히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간접 자본도 대체로 노후했어요. 또, 디지털 시대로의 진입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 대국이요, 유럽연합을 이끄는 주된 국가이자 서구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평화세력입니다. 메르켈 씨는 오늘의 독일을 존재하게 만든 대단히 소중한 정치가인 것이고요.
아무쪼록 내년 봄에 제20대 한국 대통령으로 뽑히는 분이 누굴지는 몰라도, 그분은 앙겔라 메르켈 씨에게서 배우는 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역사가 우리에게도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ㅡ 백승종 교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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