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포럼

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

ree610 2005. 6. 2. 07:02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의 말동무로 30여년간 활동해온 김혜원(70)씨가 이들과의 절절한 사연을 담아 ‘하루가 소중했던 사람들’(도솔)이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김씨와 편지를 주고받거나 면회 등을 통해 잘못을 고백하고 새롭게 거듭난 사형수 20여명 가운데 9명의 얘기를 엮었다.

4남매를 둔 가정주부이던 김씨가 사형수들의 말동무로 나선 것은 1975년 17명의 연쇄살인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대두 사건을 접하면서부터. “남편이 지나가는 말로 흉악범과 동향이라면서 제에게 한번 전도해보라고 권하는 거예요. 한참을 망설이다 별로 기대도 하지않고 교도소에 편지를 보냈는데, 뜻밖에도 답장을 보내왔어요.”

외롭고 고독하다는 내용의 편지에 다시 답장을 보내고 면회를 가면서 두 사람 사이에는 혈육 못지않은 정이 두텁게 쌓여갔다. 1976년 12월18일 사형이 집행된 김대두씨는 어머니같은 김씨에게 유언을 남겼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출소자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갱생의 길을 열어주시라는 것입니다.”

독실한 기독교인인 김씨는 이후 교도소 봉사를 위한 기도모임인 ‘사계절’을 만들어 사형수들에게 희망을 심는 역할에 나섰다. 1979년 치정살인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박철웅씨는 김씨의 교화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다음해 성탄절에는 김씨의 딸에게 연하장을 보냈다. 옷의 실오라기를 풀어서 자수를 놓듯이 꿰매 쓴 감사의 편지였다.

1993년 방화 살인 강도 등으로 사형이 집행된 강순철씨는 김씨가 건넨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와 성경으로 글자를 익혀 사형직전에 ‘어머님 전상서’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또 어린이를 유괴살인한 주영형씨와 남편을 청부살인한 강영신씨 등 사형수들도 김씨의 만남을 통해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맞이했다.

김씨가 이들의 사연을 다큐멘터리 에세이로 출간한다는 소식에 한때 사형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글을 보내왔다. “사형수 중에는 죄를 저질렀지만 회개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 속에는 천사가 승리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는 대통령 재임시절 한 사람의 사형수도 형을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김씨는 오는 8일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갖는다. 사형수들이 밥풀로 만든 십자가 등 각종 유품과 편지가 공개되고 설치작가 신영성(경희대 국제교육원 겸임교수)씨의 ‘소외되고 버려진 인간의 군상’, 사진작가 윤병진씨의 ‘서대문 형무소 사형장’ 등의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김씨는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면서 “절망의 삶에서 회개하고 용서하면서 희망을 가슴에 안은채 숨진 사형수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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