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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님께
- 이승철
한때 그는 세상을 향해 하염없이 불타오르던
열 살 스무 살 적 꽃단풍이었을 거외다.
푸르뎅뎅한 사랑을 끝내 저버리지 못한 채
마침내 젖은 낙엽으로 거리를 나뒹굴다가
저렇듯 곁가지들 하나둘씩 죄다 쳐내 버리고
그날 밤 그는 마냥 휘몰아치던 눈보라 속에서도
내사 흔들리지 않으리다. 더욱 다짐했을 거외다.
꽃 같은 울음 너머 서산마루에 해 떨어지고
잔설이 누워 있는 저 눈밭가에 홀로 서서
팍팍한 세상사 빽빽하게 질러가기 위하여
설운 가슴 마다않고 잡목 숲이 되었던가.
가녀린 살과 등골 시린 뼈 한 자루로
이 엄동설한을 견뎌보겠다고 당신과 내가
그리 다짐했던 것을 말하자면 그대를 향한
그 얼마나 뼛속 옹골찬 그리움 때문이었나.
* 겨울나무는 꽃도 잎도 버린다.
그 잎도 꽃도 없이 겨울을 지난다.
화려하게 사랑하다가 시들어 떨어져 나간 시인 자신을 그리어 보고 있나.
그렇게 떨어져 나간 잎과 열매로 인해
숲이 보이고 숲 너머도 보인다.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