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는 곳
- 강인환
길 솟은 억새와 쑥 덤불이 웃자란 곳
몇 걸음 아닌데도
나는 늘 거기까지는 가보지 않았다
금연구역 경계를 벗어난 몇 발짝에서 멈춰
우산을 들고 바라보면
빗속의 능선들이 적막해서 아름다웠다
비안개가 북에서 남으로, 비 구름이 서에서 동으로
골짜기를 파고들며 애태우고 있었다
내가 피우는 담배 연기는 맛있게
우산의 경계를 빠져나와
굵어진 빗줄기에 소스라쳐 사라져버리고
저 여름철의 헛것들이 시들고 쓰러져서
제 스스로를 거둔 다음에야
내가 가보지 않은 곳이 환하게 드러나 보였다
등성이로 올라서지 못한
산 발치에 낙엽을 더 떨군 교목 한 그루가
여름내 우듬지에 숨겨둔 까치집을 내보일 때
저쪽에 대여섯 채의 둥근 지붕이 떠올랐다
맨 앞에 마중나온 그 집의 문간에는
오래된 주소가 아닌지
셀로판지와 검은 리본에 묶여
시든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