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6:32~48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찬송 286장 주 예수 내 맘에 오사
이스라엘의 죄와 여호와의 긍휼하심 (시 106:34-48)
(1) 다윗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에 어떻게 행동하였는지 서술함으로써 긴 이야기를 마무리해 놓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 뒤에도 광야에 있을 때와 다름없이 행동하였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예전과 다름없이 심판의 채찍과 긍휼의 손길로 그 백성을 다스리셨다.
1)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착하는 그 순간까지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타락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우선 이족들을 완전히 멸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들의 목숨을 살려주기는 할 망정 그들과 어울려 가깝게 지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에 우리는 `열방과 섞여서`라는 구절을 대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방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친밀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며 섞여 살다 보니 자연스레 `그 행위를 배우게` 되었다는 뜻이다(35절). 이렇게 된 후 그들은 이번에는 이방인들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일만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우상 숭배의 풍습도 다르게 되었던 것이다(36절).
이러한 죄에 물드는 사람은 하루가 다르게 많아졌으며 마침내 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상 숭배의 풍습에 처음 물들기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있는 자녀를 죽은 신 앞에 제물로 바치는 끔찍한 죄까지 범하지는 않았었다. 자녀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우상 숭배 중에서도 특별히 난폭하고 비인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똑같이 되고 말았다(37,38절). 저희가 그 자녀로 사신에게 제사하였도다. 이로써 그들은 우상숭배에 더하여 자기들의 분신인 사랑스런 자녀들을 살해하는 죄까지 범하였던 것이다. 무죄한 피 곧 저희 자녀의 피를 흘려. 그들은 가장 무죄한 어린 아이들의 피, 그것도 자기 자녀들의 피를 흘렸던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짓는 과정에서 이미 어느 정도 그 대가를 치룬 셈이다. 우선 자신들이 살아가게 될 `그 땅이 피에` 더러워지고 말았다(38절). 그리고 양심이 마비되어 마음속까지 타락하게 되었다(39절). 더군다나 거룩하신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증하게 여기셨다.
2)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심판을 내리셨다. 그것 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택하심을 입은 이스라엘 백성이 오히려 주 여호와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이방인들 보다 감사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크게 노하시고 말았다. 자기 기업을 미워하사.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몹시 싫어하신다는 의미로서, 죄의 결과 중에서 가장 좋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던 사람일수록 만일 그들이 배반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문 앞의 거름더미처럼 더욱 싫어하신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시자 이스라엘은 곧 적군의 침략을 받아 쉽사리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41,42절).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이스라엘은 그 극진하신 사랑만 모두 잃었을 분, 악한 길로 유혹하던 사단을 통해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이 저희를 치리`하게 되었을 때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학대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안타까와 하시며 여러 번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으나 오히려 완악한 마음을 품어 죄에서 떠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의 세월을 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43절).
이것은 사사 시대를 의미하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기회 있을 때마다 사사를 세우시고 그 백성을 구원하려 하셨으나 그들은 얼마쯤 지나면 다시 우상 숭배로 되돌아 가곤 하였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스스로 겸손해지지 않는 자들이 심판을 받아 비천한 처지가 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44-46절). 이스라엘 백성은 그동안 지은 죄에 대한 벌을 받았으나 완전히 멸망을 당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잠시 버려두었으나 아주 끊어버리지는 않으셨다는 뜻이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사 지난 날의 죄악을 기억하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출 3:7). 본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사람과 달리 `뜻을 돌이키는` 일이 없으신 분인데 그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에서 계획을 변경하셨던 것이다. 비록 그 백성이 옳지 못한 길로 행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그 관계를 끊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처음의 언약을 절대로 어기시지 않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 들리자 하나님께서는 한참 타오르던 적의 분노를 제어하시고 그 돌덩이 같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 넣으시사 이웃을 긍휼히 여기게끔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떤 기예보다도 월등하게 뛰어나지 않은가
(2) 결론 부분에 이르러 다윗은 기도와 찬양으로 끝맺는다. 먼저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을 완전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사사들이 통치하던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 중의 많은 무리가 이방인의 땅에 끌려 갔었는데(나오미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룻 1:1) 그들은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 이런 기도를 할 만한 시기였던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 앞에 나아와 `우리를 구원하사 열방 중에서 모으시고 우리로 주의 성호를 감사하게 하소서`라고 간구하였다. 즉 그는 성전에서 감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드린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일을 처음부터 계속 주관해 오신 것을 찬송하였다(48절).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찬양할 지어다. 이것을 제사장들에게 외치게 하고 백성들은 `아멘 할렐루야`라고 외치게 하였다.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시편 106편44절 / 개역개정)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들의 고통을 돌보시며
** 처음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
* 이스라엘이 받은 징계(106:40-42)
불순종을 일삼는 이스라엘이 받은 징계는 원수의 압제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 멸망할 때까지 끊임없는 외침을 받았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패역과 하나님의 징계, 그리고 그들의 회개와 하나님의 구원이 교차하는 역사입니다.
주님! 꺼져가는 등불을 아주 끄지 않으시고 주의 이름을 위해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끊임없이 용서와 긍휼과 자비로 구원하시는 여호와를 할렐루야 찬양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