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일 나는 모스크바에 있었다. 일부러 모스크바 경유 파리행 비행기 환승을 택해 3일간 그 도시에 있었다.
러시아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영원히 사장(死藏) 시킬뻔 했다.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내렸고 간신히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보냈다.
도스토옙스키, 정확히는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1821 - 1881)의 ‘죽음의 집의 기록’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지식인들 모임에서 당시 차르 니콜라이 1세의 절대왕정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시베리아로 유형이 보내졌고 4년간 옴스크 감옥에서의 수형 생활을 체험으로 죄수와 민중들의 생생한 삶을 바탕으로 한 글을 묶은 책이 ‘죽음의 집의 기록’이다. 글의 구성이나 서술형식이 딱히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기록'이라고 해야 맞을 듯한 책이다. 책의 중심 테마는 '자유', '악', '러시아 민중'이다. 특히 '자유'에서는 지식인과 일반 민중의 '자유'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서술한다.
아마 도스토옙스키 시대의 러시아 지식인들은 오늘 한국 사회의 지식인들과는 달리 자본권력 추종의 잡민화 수준은 아니었던가 보다. 평균적으로는 사회를 개선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민중은 자신들의 처지를 바꾸기 위한 자의식의 자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체념하고 포기한다. 여기에 도스토옙스키의 깊은 고뇌가 있었다.
그 ‘민중’은 오늘날 ‘대중’으로 변모했다.
감옥에서 도스토옙스키는 민중, 아니 대중을 이렇게 묘사했다.
"...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익숙해 질 수 있는 동물이라... 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본질에서 원래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
기적적으로 모스크바로 생환한 도스도옙스키는 ‘목숨을 걸고’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오늘 러시아가 도스토옙스키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이름으로 기념관을 박물관을 만들고 모스크바 시내에 그의 이름으로 지하철 역까지 만들면서 러시아 문학과 문화의 자산으로 여기는 사실은, 그의 험난한 인생에 비추어 기적이다. 인생살이 낭떠러지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당했던 경험이었지만 그는 절망만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생명의 약동과 포기할 수 없는 생의 기쁨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리고 ‘더러운 대중들’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본래의 모습일 수도 있는 ‘인간의 덕성’에 대해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싶어했다. 간절했다.
"땅에 엎드려서 입을 맞추고 눈물로 그것을 적셔라. 그러면 네 눈물이 대지의 열매를 맺어줄 것이다. 이 땅을 꾸준히 언제까지라도 사랑하라. 무엇이든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고 또 이 사랑의 열광과 환희를 맛보아라. 네 기쁨의 눈물로 이 땅을 적시기도 하며 너의 그 눈물을 또한 사랑하라."
"내 형은 새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이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아무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의 행동은 옳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대해(大海)와 같아서, 모두가 흐르고 흘러가면서 서로가 이어져 닿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한 끝에서 당신이 몸짓을 하면 바로 반대쪽으로 그 반향(反響)이 울려올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죠프 형제들'
ㅡ 김 상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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