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고령화는 아직 탐험되지 않은 신세계와 같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의 지배적 종이 된 이래, 지금처럼, 그리고 다가올 미래처럼, 노년의 삶이 그 중심에 서게 되는 세상은 여태까지 없었다.
과거, 노화로 인한 사망이 매우 희귀한 현상이었음은, 르네상스 시대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쓴 '수상록'의 한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늙어서 죽는 일은 드물다. 독특하고 이례적인 이 죽음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노사(老死)는 죽는 방법 중 최후이자, 극단적인 방법이며, 요원하기에 고대하지 않는 죽음이다."
최근 발표된 WHO 세계건강통계에 따르면 2014년생 한국여성의 기대수명은 85.5세에 이른다. 우리보다 앞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이미 작년에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7%에 육박했고, 독거노인의 복지시설 입소 차례를 기다리는 대기노인(待機老人)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한다.
고령화 사회가 가져올 여러 문제들이 있겠지만,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무래도 범죄와 관련된 부분이다. 고령자는 여성, 아동 등과 함께 사회적 약자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범죄취약군에 속한다.
범죄자의 어두운 욕망은 노인의 흐려진 기억력과 약해진 청력에 또아리를 틀고, 세 치 혀를 놀려 온갖 감언이설로 '속임의 덫'을 놓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노인과 연결되는 '로또'를 꿈꾸며 전화기 버튼을 눌러대고 있을지 모르는 어느 '보이스피셔'를 상상해 보라! 또, 하루 하루 약해져 가는 근력으로 지탱되는 몸은 손쉬운 육체적 가해행위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 안전장치가 될 젊은이와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가 예외가 되고, 노년의 독거가 보편적인 삶의 형태가 될수록 이러한 범죄취약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 미국에서는 '노인 학대 및 경제적 착취예방'의 기치아래, 관계기관의 협력 프레임워크인 10개 지역 '노인정의 TF(The Elder Justice Task Force)'를 런칭하기도 하였다.
진화생물학자 조너선 실버타운은 그의 저서 '늙는다는 건 우주의 일'에서 이렇게 말한다. "죽음을 잊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나, 잊힘을 사유하는 것은 노년의 숙명이다."
이를 빗대어 말한다면, "노인을 위한 정의를 잊는 것은 범죄자의 특권이나, 그 잊힘을 사유하는 것은 법을 집행하는 자들의 숙명이다"라고나 할까?
노년의 삶이 어떻게 정의로워야 하는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은 결국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과 정의의 문제'를 사유하는 일에 다름 아닐 것이다.
- 이정봉 부장검사 (강릉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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