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문밖으로 새어나오는 급한 용건임에 틀림없는 통화 소리를 들으며, ‘하루에 저런 통화를 몇 번이나 해야할까’ 생각했다. 통화하면서 펼쳐놓은 스케줄 노트는 이미 2005년 11월까지 채워져 있었고, 하루당 배당된 칸에 맞춰 스케줄을 적어놓기위해서는 그 안에서도 몇 줄로 등분을 나눠서 깨알같은 글씨로 적어내려가야했다.
“이렇게 1시간씩 쪼개서 살아요”
대중들이 알고 있는 윤형주보다 훨씬 더 자기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묘한 든든함을 느끼며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음악이라는 이름의 선물
윤형주는 3남3녀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경희대 학장 출신의 5개 국어에 능통하셨던 아버지와 신학교를 졸업하고 음악적 소질이 타고났던 어머니. 윤동주와 육촌관계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도 교육이나 경제적인 면으로 풍요한 환경에서 성장한 윤형주는 팝송을 좋아하는 의대생으로 성장하여 당시 획기적인 반향을 일으키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트윈폴리오’의 주인공이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마치 비틀즈를 그리워하듯 사람들은 「하얀손수건」, 「웨딩케」에 향수를 느끼곤하니 말이다.
“팝송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팝송만 들었던 건 아니고 깐소네, 샹송, 록큰롤… 음악을 편식하지 않고 잡식으로 들었죠. 그러다가 연대 의대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피닉스’라는 그룹을 만든 것이고, 트윈폴리오 전에 이장희, 유종국과 함께 ‘라이너스 트리오’로 활동하다 해체하고 무교동 음악감상실에서 만난 송창식과 ‘트윈폴리오’를 시작한 거예요”
상상은 잘 안되지만 서태지나 HOT를 좋아하는 여학생을 생각하면 그 당시 ‘트윈폴리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런 인기에 자신은 스타가 되고 자신의 노래는 히트곡이 되었는데 그는 당연히 의사가 돼야하는 줄로 알고 살았단다.
“나도 모르게 유명해진거지, 내가 가수가 되겠다거나 음악을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한 군데 앉아서 비슷하게 아픈 사람 100명씩 볼 생각을 하니까 숨이 막히더라고요. 그래서 의사가 아닌 다른 걸 생각하다가 CM송 만드는 광고회사를 차려서 지금까지 오란씨, 새우깡, 롯데껌, 써니텐… 1400곡을 만든 거예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광고음악을 만든 장본인이고, 하드락이나 랩을 즐기는 젊은이들도 해변가에서 즐겨 부른다는 「조개껍질 묶어」, 「두개의 작은 별」처럼 그의 노래가 사랑받는 것을 보면 그의 음악적 소질은 타고난 게 아닌가 싶다.
“음악적 소질은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것 같아요. 저는 어려서부터 찬양과 함께 컸거든요. 크면서 팝송을 좋아하게 됐고 팻분, 레이찰스, 피터폴앤메리 등에게 음악적 영향을 받았죠”
나의 유년시절을 거울삼아
오락시간에 걸릴까봐 소풍을 싫어하고, “차렷, 경례” 구령소리가 뒷자리 아이들에게 안들릴만큼 너무 작아서 혼이 났던 아이가 바로 윤형주였다. 사실 지금으로써는 상상이 안될만큼 소극적이었던 윤형주 성격이 바뀐 것은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의 독려로 시작한 성가대에서 찬양을 부르면서부터다.
“그게 찬양의 힘인가봐요. 성가대하면서 성격이 바뀌었어요. 성경에도 찬양 부르는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신다는 말씀이 있잖아요. 바로 찬양하는 가운데 위로 받거나 소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는 이유도 그 때문이예요. 바로 나에게도 하나님이 찬양하는 가운데 담대함과 용기를 허락해주셨던 거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녀들도 아침마다 아이 셋을 태우고 남산에 위치한 모 사립초등학교까지 가는 40여분동안 늘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었다.
“하루는 뮤지컬을 들려주고 다음 날은 클래식, 찬양, 오페라 아리아 등등 아빠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면서 학교를 갔어요. 그런데 큰 딸은 구성에 재미를 느끼고, 둘째는 노래, 막내는 악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그게 훗날 전공과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젊은 주부들에게 ‘어려서 무엇을 들려주었느냐 또 무엇을 보여주었느냐 어디에 데려갔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가 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윤형주는 결국 아이들도 신앙안에서 동역자라고 말한다. 엄청난 물적 지원으로 쳐들어오는 세상 문화 속에서 기독교문화는 늘 빈약했지만, 이제는 그의 자녀들이 당당하게 맞서 싸워 이기길 바란다. “너희들은 문화의 전사들이며, 투사들이라고 말해요. 최고가 돼있어라. 그래야 그리스도의 문화가 너희를 통해서 권위를 얻는거야.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일 뿐, 너희들의 영광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이렇게 훌쩍 커버린 아이들과 함께 윤형주는 2003년 7월 1일 세계 예술가들의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뉴욕 카네기홀에 서있었다.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만큼 공연 전 긴장된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내는 기도만 하고 있고, 아들은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가만히 앉아있질 못했다. 그런데 국내 포크음악 1세대 윤형주를 필두로, 버클리음대 대학원에서 뮤지컬 작곡을 전공하고 있는 큰 딸 선명과 의학을 공부했지만 기타와 키보드 연주실력이 일품인 첫째사위.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하고 현재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둘째 선영과 함께 둘째 사위 역시 성악을 전공한 재원이며, 막내아들 희원과 아내 김보경 또한 노래 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실력도 수준급인 윤형주 가족이 뉴욕 카네기홀을 들썩인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윤형주 가족은 오는 8월 11일부터 이틀동안 세종문화회관에서 카네기홀 앵콜공연을 연다.
“이번 공연은 1년에 7~800명씩 죽어가는 소아암·백혈병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공연이예요. 공연수익금으로 지방에서 올라온 어린이들이 기거하면서 치료받을 수 있는 처소를 마련해 주려고 했는데, 알로에마임, SK텔레콤, 이랜드의 도움으로 벌써 처소가 두 군데나 마련됐어요. 그래서 공연 전에 개소식까지 마치고 공연 때 아이들이 생활하는 모습까지 영상으로 보여줄 계획이예요”
그리고 소아암백혈병어린이들을 위해 윤형주가 작곡한 「참 아름다운 곳」을 가족합창으로 부를 생각이다.
‘너 있는 곳이 어두어지면 빛이 되어 찾아갈거야 … 외로울 땐 꼭 말해줘 네 이름을 불러줄께 … 이 세상은 힘들기도 하지만 신나는 일이 많아 … 이 세상은 살아볼만한 참 아름다운 곳이야’
바로 이렇게 노래하는 「참 아름다운 곳」은 이번 공연의 주제곡이자, 윤형주 가족의 주제곡이다. 아버지의 일로만 생각했던 소아암백혈병어린이나 말기암환자, 재소자 등을 향한 손길이 이제는 가족의 손길이 되었고, 그 마음이 한데 엮어져 관객들까지 하나로 묶이는 감동이 이미 짐작되고도 남는다.
하루는 아이들이 ‘아빠가 가장 기뻤던 때가 언제냐’고 물었을 때, 윤형주는 “가족콘서트 준비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예배드리고 연습했던 때”라며, “늘 그 때처럼 되자. 늘 마지막처럼 살자”라고 말했다.
‘부모는 아이들의 삶의 샘플이다’. 윤형주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작곡, 방송, 사업, 광고, 신앙생활… 그 어느 것도 쉬운 것 하나 없지만, 그 중 ‘아버지’가 가장 힘들다며, “꿈을 가지십시오. 꿈이 없는 가정의 아이들은 절망 뿐이예요. 그리고 서로 사랑하세요”라고 당부한다.
아이들에게 카네기홀 데뷔라는 유산을 줄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하다는 그도 앞으로 손자, 손녀가 태어나면 함께 어린이음반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는 할아버지가 될 것을 상상하니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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