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가을과 마주 앉아 -나태주- 읽어야 할 세상의 책들이 볏낱가리만큼 쌓였는데 아무런 책도 한 장 펼쳐보지 못한 채

ree610 2024. 11. 15. 08:52

가을과 마주 앉아

나태주


읽어야 할 세상의 책들이 볏낱가리만큼 쌓였는데
아무런 책도 한 장 펼쳐보지 못한 채
이렇게 좋은 가을을 흘러보내고만 있습니다
갚아야 할 세상의 빚들이 산더미만큼 높아졌는데
누구한테도 한 푼 갚아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이렇게 빈 하늘만 쳐다보며 일생이 저물로 있습니다
가을이시여,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오늘도 또 세상의 일은 귀먹은 듯 잠잠하고
멀리서 태풍 소식만 요란스럽다 그러합니다
가을이시여, 오늘은 당신하고라도 마주 앉아
녹차나 따습게 우려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만들어 내며 마셔볼까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