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1:12~20
<죄인에게 보이신 긍휼과 은혜>
찬송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Ⅲ.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대한 언급과 찬양 (딤전 1:12-17)
1.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림(12)
사람들에게 사역을 맡기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다. 사역자들이 사역자들을 만들 수는 없다. 하물며 사람이 스스로를 사역자로 만드는 것은 더더욱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그 일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역을 맡기기 위해 부르신 자들을 그 일에 적합하게 만드신다. 즉 그는 자신이 자격을 준 자를 부르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사역을 맡기기 위해 부르신 자들에게 능력 뿐 아니라 충성심까지도 주신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믿을만한 종들이다. 사역에 대한 부르심은 큰 은혜라고 하겠다.
2. 바울의 회심에 대한 자신의 설명(13-17)
〔1〕회심 전의 바울은 어떠했는가 종종 크고 뛰어난 봉사를 위해 예정된 자들은 회심 전의 자신들을 버린다. 만일 진실로 회개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으시지 못할 정도로, 혹은 그를 위해 우리가 일하지 못할 정도로 중대한 죄란 없다. 진실로 회개한 정도로 중대한 죄란 없다. 진실로 회개한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 선한 사도는 종종 자신의 이전 삶이 어떠했는가를 고백하였다.
〔2〕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큰 은혜.
1) 그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긍휼을 입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한 것은 알고 한 것 보다는 죄가 가볍다고 하겠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행하는 죄도 죄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무지는, 비록 죄를 무효화 하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정상 참작의 구실은 될 것이다. 죄인들이 알지 못하고 행하는 것의 바닥에는 불신이 깔려있다. 이러한 이유들로 헤서 바울은 긍휼을 입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14절). 즉 그의 영광의 복음 가운데 나타난 그리스도의 은혜를 말한다.(15절). 우리는 여기서 복음 전체의 개요를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임하셨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그것은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 복된 소식이다. 또한 그것은 너무 좋기 때문에 믿어지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다. 이는 그것이 미쁜 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가장 큰 죄인이었다. 바울은 스스로 자신이 그러한 자였음을 인정하고 있다. 핍박자는 가장 좋지 못한 죄인들 중에 드는 사람이다. 바울은 그런 자였던 것이다. 다른 곳에서 바울은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엡 3:8)로 부르고 있는데 여기서는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부르고 있다.
3) 바울이 하나님께서 찾은 긍휼.
① 이는 회개하고 믿게 될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16절). 지극히 진노케 한 자에 대해 그가 아주 오래 참음은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의 한 보기였다. 아무리 큰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절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다른 모든 사람들의 본을 위해 예정된 것이었다.
② 그는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감사할 만한 고백을 집어넣지 않고서는 자신의 편지를 계속해서 써 나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긍휼에 대해 보답할 의무를 느끼는 자들은 자기들의 마음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로 넓힐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의 위대하심을 표명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Ⅳ. 디모데에게 다시 권고함 (딤전 1:18-20)
바울은 디모데에게 확고하게 그의 사역 가운데 나아갈 것을 훈시하고 있다(18절) 전에 디모데를 지도한 예언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울로 하여금 디모데에게 이 직무를 맡기게 하였다고 하겠다.
사역이란 죄와 사단에 대한 선한 싸움이다. 사역자들은 부지런하고 용기 있게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전에 디모데를 지도했던 예언들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의무를 활발히 다하도록 분발시키는 동기가 된다.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서 품은 선한 소망들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의무를 다하도록 환기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19절).
선한 양심을 버리는 자들은 곧 믿음의 파선자들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둘 모두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전에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적이 있었던 두 사람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를 믿음에 관하여 파선한 자들로서 예로 들어 말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을 사단에게 내어 주었다. 즉 그들로 하여금 훼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사단의 왕국에 속한 것으로 선포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정반대로 역사하실 수 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는 사단에게 내어준 바 되었다. 이는 그들로 훼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였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사단에 의해 더욱 훼방하는 자들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자.
**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내게 주시는 은혜와 교훈과 축복은 무엇인가?
(디모데전서 1장 15절/ 개역개정)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괴수도 구원하시는 예수
* 사도직의 출처(1:12)
바울의 사도직의 권한은 그를 충성되이 여기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계 사도들은, 바울의 사도권이 출처가 없는 불분명한 것이라고 비방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주장합니다(고전9:1-27).
* 긍휼을 입은 바울(1:16-2:7)
바울이 긍휼을 입은 까닭은 죄인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표본으로 삼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회개한 자에 대해서는 그 죄를 다시 기억치 않으시고(렘31:34), 어느 누구라도 널리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사55:7). 이런 점에서 바울이 이방인의 스승이 된 이유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과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선민 의식’에 빠져, 이방인들은 물론 자신의 동포인 사마리아인들까지 멸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이 세상 누구에게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엡3:6).
주님! 나 같은 흉악한 죄인도 사랑으로 구원하여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만민에게 증거하게 하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