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와 응답: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증언대회]
44년만입니다. 1980년 5.18의 참혹한 피해 가운데서도, 성폭력피해자들은 가장 늦게 목소리를 냈고, 힘들게 증언대에 섰습니다.
20대 청춘이 60대, 70대에 이르도록 성폭력피해를 증언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었습니다. 국가폭력, 가부장적 억압문화, 개인적 트라우마 등이 겹겹이 막아섰습니다.
여러 피해자들이 오셨고, 그 중 4분이 단상에서 증언했습니다. 개개인에겐 불과 10분이 할애되었지만, 그 10분은 충격, 분노, 고통, 눈물, 목메임의 순간들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고통과 눈물이 모여 작은 '열매'를 결실했고, 그 열매는 다시 씨앗이 되어 더 많은 열매로 결실되리라 믿습니다.
오늘의 주제어는 '용기와 응답'이었습니다. 자신이 44년째 겪고 있는 고통을 온세상에 전파하는 용기가 있었고, 그 용기에 응답해야 합니다. 오늘 "나는 너다,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고 함께 외쳤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국가는 응답하라"로 이어지는 자리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의원들에게 스카프를 둘러줬고, 의원들은 피해자들에게 장미꽃을 선물했습니다.
의원들에게는 스카프 두르고 입법적 소임, 대변자적 소임을 다해달라는 주문이었고, 의원들이 드린 장미는 그 증언자들의 고귀함과 아름다움, 희망의 삶을 국민의 이름으로 드린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의 증언자리는, 5.18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의 한 성과이기도 합니다. 4년간의 힘들었던 진상규명활동 가운데, 성폭력 진상규명은 가장 의미깊은 진전이었습니다.
처음부터 고난첩첩, 악전고투였습니다만, 또 피해자 중에서 일부만 마지막까지 결심을 굳히고 관여했지만, 그 일부의 증언만으로도 당시 폭력의 생생함과 지속적 피해를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들의 증언이 정밀한 사회과학적 분석과 성의있는 조사에 힘입어 조사보고서와 종합보고서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부족했습니다. 증언자들의 소리는 추진의 동력이 되어 오늘의 증언자리, 그리고 피해자들의 모임 "열매"로 결실되었습니다. 오늘의 증언을 숙연하게, 공감하며 청취한 분들이 더 나아가 입법적 결실과 진실의 깊이파고들기, 치유의 공동체로 만들어가기 위한 국가적 책무, 사회적 연대를 추진하는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증언자들이 중간중간에 힘들여 말씀하신 것 중에서, 가해자에 대한 기억 중에서 "반팔 메리야쓰를 입은 가해자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꿈", "강간당시 군인들에게서 맡은 냄새에 대한 기억" "얼룩무늬 군복을 보면 어지럽고 구토가 남" "심한 우울증과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잇을 때가 많다"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5.18의 고통은 44년전의 1회성 과거사건이 아니라 44년째 지속되는 현재진행형의 고통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증언해주신 분들, 그들을 돕는 분들, 힘들게 조사하고 증언대에 이르기까지 협조해주신 모든 분들께 존경을 표합니다.
- 한인섭 교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