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전태일 열사의 유언과 엄마

ree610 2023. 11. 14. 15:32

 


전태일 열사의 53주기를 지나면서 기독교인으로서 그가 분신후 병상에서 어머니 이소선 권사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유언이다. 기독교인이라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엄마, 예수님 믿죠?"

"응, 그래 당연히 믿는다"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어봐요 목사님들은 교회에서 교인들을 향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설교를 하시잖아요 나는 정말 성경 말씀대로 실천하는 목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열명 정도라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그런 사람들처럼 그런 식으로 엉터리로 예수를 믿으려면 차라리 믿지마세요"

"엄마 앞으로 두고 보세요 많은 목사님들이 내가 죽으면 분명히 내 죽음을 자살이라고 말할 겁니다. 그리고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다고 말할 거예요"

"그렇지만 요한복음 15장에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저는 평화시장 친구들과 수만명의 불쌍한 여공들을 위해서 죽은 것이니 주님의 말씀에 절대 어긋난 것이 아니에요"

당시 전태일이 일하던 평화시장은 북한(서북지방)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60%정도나 되었다. 이들이 훗날 자리를 잡게되자, 자신들은 주일날 성경책을 들고 영락교회와 새문안교회로 예배를 드리러 가면서 오히려 노동자들은 쉬지도 못하게 하고 잠이 안오는 주사를 맞게 하였던 것이다.

주일 까지도 가혹하게 일 시키는 모습을 바라보며
전태일은 1970년 4월경 작성한 글에서 악덕 기독교인 업주들의 이중성과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한탄했다.

"나이가 어리고 배운 것은 없지만 그들도 사람, 즉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의 영장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한자는 부한자의 노예가 되어야만 합니까? 왜 빈한자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안식일을 지킬 권리가 없습니까?”

일요일에도 노동을 시키고, 환풍기가 없어서 일하다 폐병에 걸려 죽어 나가는 여공들을 보며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해 달라고 정부 이곳저곳에 탄원을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에 대한 시위나 집회를 하려는 것조차 방해로 무산되자 아무짝에 쓸모 없다고 여긴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들고 화형식을 거행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말라"고 외치며 분신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을 산화시켜 평화시장 앞길로 뛰쳐나와 노동자들의 열악한 실상을 세상에 알린 뒤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거의 방치되다시피 있다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전태일 열사의 사망소식을 듣고 기독교인이었던 전태일 열사의 장례를 위해 당시 최종구 교수와 오재식 박사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에게 전태일 열사의 장례를 부탁하려고 찾아갔다.

그들이 한경직 목사를 찾아가 부탁한 이유는 영락교회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도 있었지만, 한국교회의 상징이라 불리던 영락교회가 열악한 노동자들의 고통과 인권문제에 대해 함께 나서주면 기독교인들의 관심과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할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경직 목사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동안 우리 교회에서는 자살한 사람 장례예배는 치른 적이 없었고, 장로교 원칙상 치를수도 없고 치러서도 안됩니다. 이번에 꼭 전태일의 장례식을 교회에서 하고 싶다면 내가 알기로는 그 청년이 감리교회를 다니는 신자라고 하던데 그 교회가서 장례식을 치루는 것이 마땅한 원칙입네다."

한경직 목사는 전태일 열사가 자살했다는 이유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리고 그는 훗날 전두환이 광주학살을 저지르고 권력을 잡게되자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에 참석해 전두환을 여호수아 장군에 빗대며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이 기독교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나 크다고 본다. 그러기에 당시의 일들을 반드시 알고 뼈저리게 반성해야만 한다. 그동안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전태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이라고 외면하며 교회내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를 꺼려왔다.

내가 가슴 시리도록 이 시대 교회를 보며 마음 아픈 것이 있다면 그 옛날 사도 바울이 배설물처럼 벗어던진 것들을 악착같이 달려들어 다시 주워 입으려는 모습 때문이다.

먹고 사는것, 중요하다. 그러나 '예수'를 따른다는 기독교인이라면 오직 먹고 사는데 올인하면 안된다.
우리가 그나마 요즘처럼 주일날 편하게 예배를 드리며 쉴수 있게 된것도 불과 수십년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도 주일날 못쉬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충분히 눈 딱감고 모른채 하며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 누구보다 잘먹고 잘살수 있었던 어느 기독청년 하나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법전을 손에 쥐고 산화하였던 그 희생의 댓가로 우리가 이렇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지도 어느덧 5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노동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이러한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교회가 전태일 열사의 모습에서 예수의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 그날, 이 참담한 죽음의 행렬이 멈추는 그날에 지금 주님품에 계신 열사께서 활짝 웃게될 모습을 간절히 꿈꾸어 본다.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 전태일에 빚진자들이다.

※ 전태일 열사에 대한 마지막 유언과 생전 기록들은 '전태일 실록'이라는 책을 꼭 일독해 보시길 권해드리고 싶다. 저자인 최재영 목사님께서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권사님과 주변 인물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오랜 기간동안 자료를 수집해 집필하신 소장가치가 있는 귀한 책이다.

전태일 열사 53주기 추모 예배 공동체, 산업 현장에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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