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평등법 제정 관련 성명서에 대한 단상
ㅡ 정종훈 교수(연세대, 기독교윤리)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지인 기독공보 2021년 7월 17일자 신문 2면을 보면, “우리는 평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반대하고 법률안의 철회를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서가 등장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와 전국 69개 노회, 9,300여 교회, 250만 성도들의 이름으로 2021년 7월 12일에 발표된 성명서이다. 250만 성도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전국 69개 노회 가운데 한 노회의 노회원으로서 성명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1. “평등법은 평등을 앞세우고 소수 보호의 명분을 주장하지만, 도리어 다수의 권리를 제한하고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이미 발효중인 30여 가지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을 잘 시행하는 것이 차별을 막고 평등을 높이는 길이기에 동 법률안에 반대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
소수 보호가 다수 권리를 제한하고 차별을 조장할 수 있다는 역발상이 기상천외(奇想天外)하다. 지금의 다수 가운데 누구라도 언젠가는 소수가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소수를 보호하는 것이 곧 다수를 보호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약자인 소수에게 우선적인 관심을 주는 것을 본질로 하는 신앙이다. 예수께서는 함께 있는 99마리 다수의 양을 그대로 두고 한 마리 잃은 극소수의 양을 찾아 나선 선한 목자가 아니셨는가. 포도원 품군의 비유에서도 일하기에 불리한 조건을 지녔던 한 시간밖에 일하지 못한 일군들에게 동일한 임금을 우선적으로 지급해야 한다고 보지 않으셨는가. 공사역을 하시던 예수께서는 주로 환자들, 장애인들, 세리와 창기들 등 약자인 소수자들 주변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지 않으셨는가.
초대교회 신앙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헬라인과 야만인, 남자와 여자, 자유인과 노예 등 모든 차별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었다고 선언했다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며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한국교회가 소수에 대한 증오와 차별의 장벽을 허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이라면, 상대가 성소수자든, 이주노동자든, 장애인이든, 노인이든, 비신자이든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최선을 다해서 섬기고 돌보며 사랑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있는데도 굳이 평등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차별금지 사유와 차별금지 영역이 발견될 때마다 새로운 법률을 제정할 수 없기 때문이고, 뿐만 아니라 차별이라는 것이 대개는 복합적으로 야기되기 때문이다.
2. “평등법은 동성애 보호법이고, 동성애 반대자 처벌법과 같다. 우리 교단은 법률안의 동성애를 조장하는 독소조항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며 이에 반대한다.”면서 “극소수 동성애자를 보호하려다 한국사회의 건강한 가정들을 제약하는 문제가 크기에 반대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
평등법은 동성애 지지자만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보호하는 법이고, 동성애 반대자를 무조건 처벌하자는 법이 아니라 고용, 재화용역 설비와 이용, 교육, 공공서비스 설비와 이용 등 영역에서 정당한 이유 없이 실제적으로 차별하는 자들을 처벌하자는 법이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지향성, 동성애 등은 개인의 정체성을 구성한다. 자유의지에 따라서 손쉽게 벗어날 수 없으며, 타인이 그 정체성을 포기하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엄하며 존재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성적인 정체성을 이유로 해서 차별해서도 안 된다.
건강한 가정을 제약하고 병들게 하는 것은 극소수 동성애자로 인한 측면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배타적이어야 할 거룩한 성을 더럽게 만드는 이성애자들의 성적 타락의 측면이 훨씬 비중이 크다.
사회법은 동성애자를 더 이상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는다. 범죄자라 할지라도 인권 관련해서는 당연히 보호하고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데 교계 지도자들이 동성애자들을 범죄자로 취급하며 교회 영역에서 일방적으로 배제하려는 것이나 동성애자들에게 관심을 주며 그들의 인권을 옹호하는 목회자나 신도들을 이단 사이비처럼 취급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반 영역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 마치 동성애자의 문제만 존재하는 것처럼 집단적으로 행동하며 세상의 일반적인 상식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는 것은 향후 한국교회가 공공적 역할의 기회를 상실하거나 제한당하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3. “평등법은 한국교회가 이단 사이비의 문제에 대해서 대처하는 일을 제한할 소지도 있다.”며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이단 사이비 집단은 반사회적 집단이기에, 한국교회가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평등법이 한국교회 이단 사이비에 대한 대처를 제약할 것이기에 반대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
평등법이 종교의 자유를 지지하지만, 반사회적인 이단 사이비 단체까지 인정하거나 보호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반사회적인 이단 사이비에 대해서는 이미 사회법으로 처벌하고 있고, 반드시 처벌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단 사이비 단체가 기성교회를 부패하고 부정한 해악된 집단처럼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 자기 집단의 유익을 위해서 가정과 사회질서를 파괴하고 사회불안을 조성하는 것, 간음, 폭행, 감금, 재산 갈취, 의료법 위반 등 비윤리적이고 반도덕적이며 불법적인 것을 용인하는 것, 신도들의 건강한 삶을 증진하기보다는 현실을 도피하도록 강요하는 것 등 반사회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 교회와 사회와 국가는 서로 협력하며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이단들 가운데는 기독교 교리적인 측면에서 설사 다른 입장을 주장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보편적인 선을 위해서 노력하는 이단도 없지는 않다. 그러한 이단 앞에서 사회적으로 질타를 당하는 소위 정통교회라는 기성교회는 자기반성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이단 사이비 단체의 신도라고 할지라도 보편 인권의 차원에서는 배려받아야 할 존재임을 직시해야 한다. 그동안 여호와증인의 신도들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로 주장함으로써 병역회피자의 수난을 당했지만, 지금은 양심의 자유에 근거해서 대체 복무의 기회를 얻고 있는 것은 인권적 배려의 차원이기 때문이다.
이단 사이비를 운운하면서 평등법을 반대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 아닐 수 없다.
4. “평등법은 목회자들의 설교와 강연 등에 대해서 주관적인 판단으로 재단할 소지가 있어서 반대한다.”며 “이를테면 법률안 제3조 7항 다목 ‘괴롭힘’에 ‘혐오표현’이 포함돼 있는데, 이는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의도적으로 악용할 수 있고, 목회자의 정당한 종교행위를 자의적 해석으로 제한할 수 있어서 반대한다.”고 하는 것에 대한 나의 입장
평등법이 목회자들의 설교와 강연 등에 대해서 법적인 처벌을 요구하거나 자의로 해석하고 의도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은 없다. 평등법의 핵심에서 벗어난 것으로써 평등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더러워진 목욕물만을 버리지 않고 목욕물 안에 있는 사람까지 버리려는 어리석은 처사(處事)이다.
가톨릭에서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나 개신교의 특정 교단들에서 여성의 목사안수를 금하는 것,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편애하는 것 등은 명백한 차별이지만, 이를 처벌하자고 하는 사회법은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적이고 가정적인 전통과 관습, 목회자들의 설교권 등은 평등법과는 직접 상관이 없는 자유로운 영역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상식과 사회적인 상황 한가운데 있는 신도나 비신도들 중에서 비난하거나 거부할 사람은 있을 것이고, 그러한 것을 교회 선택이나 종교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사람도 있을 것은 분명하다.
사회법을 위반한 사람은 누구나 처벌되어야 하듯이, 목회자들 역시 사회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처벌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상황을 허용한다든지, 지위와 권력이 있는 사회 특권층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그렇지 않은 계층에 대해서는 엄격하다든지 하는 것은 법 앞에서의 정의와 평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열등한 차별도 우월한 차별도 처벌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법을 위반하지 않은 목회자라면, 그리고 법 앞에서 특권에 집착하지 않는 목회자라면, 처벌과 관련해서 무엇이 두려울까.
결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만일 어느 목회자가 성서의 가르침에 철저히 순종하고자 설교한 것이 사회법으로 처벌을 당하거나 모욕과 박해를 받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하늘에서 받을 상을 기억하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이 아닐까.
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의 성명서 가운데서 어느 한 부분이라도 신앙적으로나 양심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어렵다. 과연 그 성명서는 노회별로 목회자들 간에서, 개교회별로 성도들 간에서 충분한 토론을 진지하게 한 후에 작성한 것인가. 최근 차별금지법 찬반에 관한 어느 통계(시사저널/시사리서치 2021년 6월 22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60.1%였고,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는 비율이 66.5%였다. 지난해의 다른 통계(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2020년 10월 14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차별금지법을 찬성하는 비율(42.1%)이 반대하는 비율(38.2%)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준 바가 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정서와 한국교회의 일반적인 정서를 읽어내야 한다. 아니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직시하고 회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전문가들과 신학자들, 평등법에 관심을 갖고 있는 관계자들이 토론의 장으로 나아와 제대로 된 성서적이고 신앙적인 입장을 올바로 찾아야 할 것을 제안한다. 지금 우리가 거짓뉴스와 편견에 사로잡혀서 평등법을 과소평가(過小評價)하거나 침소봉대(針小棒大)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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