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정 예배

8월 12일 ~ 17일 가정 예배

ree610 2024. 8. 11. 15:56

좋은 친구와 형제
본문: 잠 17:17
찬송가: 389장

좋은 친구사이는 사랑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 본문은 친구란 서로를 향한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할 때 친구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영원토록 변함없이 서로를 사랑하는 친구 사이를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친구는 선택하는 것이다. 친구는 자기가 좋은 사람을 골라서 만난다.
 
그런데 나의 조건과 상황이 좋을 때는 얼마나 친구가 많은가?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겠다 싶으면 아무하고나 친구가 된다. 그러나 그 친구 때문에 손해를 볼 일이 생기면 어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함께 사랑하며 지내다 어려움이 닥치면 서로를 버리고 도망하는 사이가 참 친구일까? 좋은 참된 친구 사이는 함께 어려움도 즐거움도 함께 하는 사이다. 심지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일이 생기면 기꺼이 목숨이라도 내어주는 사이가 바로 참 친구 사이다. 정말 좋은 친구는 어떤 경우에도 사랑이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요 15:12~15).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사랑을 지금도 결코 멈추지 아니하신다. 우리가 위험한 일을 당해 위급할 때 우리를 배반하지 않고, 떠나지 않으신다. 영원한 파멸의 길로 달려가는 우리를 보시고 기꺼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다. 예수님처럼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일이 생기면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는 사이가 바로 참 친구 사이다. 예수님처럼 좋은 친구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향해 사랑을 고백하자. 본문은 형제는 위급한 때 고난과 슬픔을 함께하고 나누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규정한다. 형제자매는 부족하면 채워주고 흠이 있어도 사랑으로 감싸주고 잘못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끊임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관계다. 친구관계는 깨질 수 있지만, 형제자매사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깨질 수 없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가족과 형제자매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자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양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남으로 예수님과 영적 형제가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위급할 때에 참된 형제이다. 죄와 죽음에서 건지시고 그것에서 이겨주시고 자유하게 하셨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참으로 좋은 친구와 시험과 고난과 위험에서도 사랑으로 항상 함께하는 가족과 형제들이 되게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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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내게로 가져오라
본문: 왕상 17:11~16
찬송가: 369장

10년 전, 교회 건축을 마치고 입당을 준비하던 어느 주일. 오후 예배를 마치고 차량운행을 하며 마지막으로 내려 드려야 할 할머니 집사님들 세 분과 강가에서 '아이스크림 미팅'을 했다."할매들!(당시 77세가 두분, 84세 할매 한분), 다음 주일에는 교회 입당예배를 드려야겠는데 성물이 필요해요. 강대상, 기도상, 서면대 등 가장 작은 것으로 하려해도 금액이 많이 부족합니다. 함께 고민해주세요."
 
그런데 한 할머니께서 "목사님, 나는 돈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말하셨다. 순간, 아차 싶었다. 그 자리에서 할머니 손을 붙잡고 사과했다. "이 이야기는 없었던 걸로 해요. 정말 미안해요. 아예 없었던 이야기니까 마음에 조금도 담아 두지 마세요." 다음날 새벽 전화를 받았다. 경남 양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할머니 집사님의 막내아들이었다. "오늘 목사님 좀 찾아뵈려 하는데 집에 계시나요?" 속으로 '에구, 없었던 이야로 하자 했는데도, 집사님이 그새 아들에게 전화를 하셨네. 노인분에게 헌금 얘기 했다고 쫓아오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예,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집사님, 집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드디어 아들 부부를 만났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예?" "우리 어머니에게 그런 부탁을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엊저녁에 전화를 했습니다.'얘! 우리 목사님이 저렇게 걱정 하시는데 어렵지만 니가 그 돈 좀 해 주면 안 되겠니?'" 하시더라는 겁니다. "교회 다니신지 얼마 되지도 않는 우리 어머니가 헌금을 부탁 할 정도까지 되었으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구나 성전 성물 인데요"라며 헌금을 건넸다.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b)."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 까지 그 통의…(왕상 17:14a)."
 
그날 오후 양산으로 돌아가던 막내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어요. 오래 전 우리가 물건 납품을 했는데 사라졌던 거래처가 있었는데요. 지금 막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그 때 납품했던 물품 대금을 송금 하겠노라구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왕상17:13b)",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그 병의 기름이…(왕상17:16b)". 청종하는 신앙, 청종할 수 있는 신앙, 오늘의'엘리야와 그 과부'를 주님은 우리에게서 찾고 계신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가정이 말씀대로 순종하며 섬기며 묵묵히 길을 가는 종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섬김의 자리로 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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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빛을 발하는 예배
본문: 사 60:1~9
찬송가: 502장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명령하신다. 이 명령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구원명령이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이방 나라들과 이방 나라의 왕들이 이 구원의 빛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찾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런데 약소국인 이스라엘이 해방되었다고 과연 이방 나라와 그 나라의 왕들이 예루살렘으로 찾아올 이유가 있을까?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방 나라들과 왕들이 구원받은 이스라엘을 찾아올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과 제사장 직분의 회복을 의미한다. 출애굽사건이 이스라엘의 예배회복이라면 바벨론 포로 귀환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의 예배회복까지도 포함한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의 지위를 회복했을 때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든다. 그래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명령은 예배를 회복하라는 명령임과 동시에 이방 나라들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안내하라는 이스라엘을 향한 명령이다. 쉽게 말해서 나 혼자만 예배드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하는 빛을 발하는 예배를 드리라는 말이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명령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예배는 내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고 받아내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로 내가 하나님을 섬겨 드리는 시간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빛을 발하는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빛을 발하는 예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하는 예배다. 어떻게 해야 예배당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 할 수 있을까? 삶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예배당 안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는 세상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할 수 없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예배당 밖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예배당 밖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바로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예배당 밖 세상 속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갑과 을의 관계와 상관없이 서로를 존중해주고, 섬기고, 돌봐주는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주어야 할 삶으로 드리는 예배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예배당 밖에서 삶으로 예배를 드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의 기도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 저도 세상의 빛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삶으로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 사람들을 예배의 자리로 안내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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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본문: 시 37:1~6
찬송가: 434장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악인이 왜 형통하고 의인은 왜 이렇게 고난이 있을까 고민하며 호소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을 통하여 우리에게 답을 주고 계신다. 시편 37편 말씀을 보면 1~8절까지는 악인의 형통함을 통하여 불평하지 말라 그것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것이다. 또한 9~27절까지는 악인과 의인의 마지막이 다르다. 악인은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 넘어진다. 28~40절까지 보면 의인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위해 어떤 자세로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가?
 
첫째로, 불평하지 말고 선을 행해야 한다. 인간은 마음에 있는 감정이 언어로 나오게 되어 있다. 상처가 있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은 자기감정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평을 버리고 성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할 때 선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을 것이다. 주의 성실을 식물로 삼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 가운데 머물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될 때 불평이 아니라 적극적인 방법의 선을 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의 성실로 식물을 삼으며 말씀이 내 삶을 주도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오직 내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구하며 최고의 선을 행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둘째로, 하나님을 기뻐해야 한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은 명령이다.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주님의 성실을 신뢰함으로 그 안에서 행복해하며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며 감사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며 하나님을 기뻐하는 믿음으로 가나안을 누릴 수 있었다. 의인에게는 그 누구도 그를 넘어뜨릴 수 없고 위협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붙드심이 있기에 믿음의 사람은 상대적인 상황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만 신뢰하고 기뻐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이 끝까지 붙드심으로 승리하게 하신다.
 
셋째로, 삶을 하나님께 맡길 때 일하신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진정한 믿음은 맡길 줄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만을 신뢰하며 모든 염려와 짐을 하나님의 품에 맡기기를 원하신다. 나무가 버팀목이 있으면 넘어지지 않듯이 하나님께서 붙드시면 끄떡없다. 모든 문제를 주님께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맡겨 드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의 기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맡겨드리는 삶을 살 수 있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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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베푸는 것이 지혜이다
본문: 잠 3:27~28
찬송가: 218장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독일의 한스 큉은 유명한 신학자이다. "당신은 왜 크리스찬이 되었는가?" 질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올바른 인간이 되려고!"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는 피조물인 나를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이 세상을 제대로 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렇다면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혜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는 것이 지혜인가? 본문은 여기에 대해 베푸는 것이 지혜이고 언제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지 말씀한다. 참다운 지혜는 베푸는 것이다. 인생을 잘 살아보고 싶은가? '더 가져야 해. 누군가가 나를 알아줘야 해'라고 생각하면 그 인생은 피곤해지고, 분노하게 되고, 지혜를 잃어버리게 된다. '나는 베풀며 살 거야'라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혜이다.

언제 베풀어야 하는가? '베풀 힘이 있거든' 베풀어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 베풀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곧 사라진다. 나는 언제나 베풀 힘이 있고, 저 사람은 언제나 내 도움을 받는 위치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힘이 있을 때 그때 바로 베풀어야 한다.
 
어떻게 베풀어야 하는가? '아끼지 말며' 베풀어야 한다. 베풀려면 아까운 생각이 든다. 그러면 베풀 수 없다. 또한 '내일 오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미루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을 미루면 마음이 식어버린다. 감동이 되면 그때가 베풀 기회다. 또한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얼마나 어렵게 저 말을 했을까? 그런데 내일 오라는 것은 없는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는 은총으로 살아간다.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기적이고 은혜이고, 사랑이다. 가진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받은 것이 더 많다. 이것을 가지고 누릴 수도 있고 베풀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고 감사할 수 있고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주면서 사는 것이 지혜이다.
 
인생은 짧고 허무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면 허무하지 않다. 영생을 누리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나눠줄 때, 인생은 정말 가치 있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수직적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수평적 지혜는 베푸는 것이다. 이것을 하려면 믿음과 용기와 모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있어야 충만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옆으로는 베푸는 인생, 축복의 통로로 살아가시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가장 먼저 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소서. 또한 인간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베풀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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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내가 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문: 행 16:25~26
찬송가: 440장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는 억울한 매질과 옥살이에 있어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었다. 인간적으로 고민하고 세상적 방법을 찾으며 내가 하고자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쉽게 납득이 안 되게도 기도하고 찬송할 뿐이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억울함과 위기보다 더 크신 분이시고, 어떠한 상황이든 하나님께는 방법이 있다는 말씀들을 경험했고 붙잡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때 정말 신기하게도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흔들리는 등 놀라운 일들이 나타났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내가 하지 못한다고 하나님께서도 안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와 수준이 같은 분이 아니신데 하나님으로 인해 되어진 역사, 직접적으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의 영이신 성령님의 일하심인 것이다. 그로 인해 간수와 그 가족들까지 구원에 참예케 되었을 뿐 아니라 그 빌립보 땅에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다.
 사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구원을 이루셨다. 이사야 53장 5절의 말씀을 연계하면 그러한 구원에는 예수님의 찔림과 상함으로 인한 대속과 대신, 평화와 나음까지 포함된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 14장 26절을 연계하면 바로 그 예수님 이름과 함께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한 예수님 십자가 목숨값은 온 우주보다 크고, 과거현재미래 모든 인류보다 큰 것으로 그 속에는 오늘 우리의 죄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고, 본문의 바울과 실라의 문제와 위기도 포함되어 있으며, 예수님 십자가 옆에서 낙원을 약속받은 사형수의 죄와 문제들도 사실은 포함되어 있고, 성전 미문의 나면서부터 못 걷는 자의 어려움과 문제들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든, 어떤 죄인이든 예수님의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고, 예수님 이름으로 구원의 일들을 맛보는 것이며, 바울과 실라처럼 기적같은 일들도 체험케 되는 것인데 직접적으로는 그 예수님 이름가운데 약속되어진 성령님의 역사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러한 역사들에 참여할 수 있고,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될까. 그것은 결코 복잡한 게 아니다. 내 생각과 내 방식으로 하면 내가 하는 것이고, 반면 말씀으로 하면 믿음으로 하는 것이며,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하시게 된다. 믿음의 선배들처럼 그렇게 말씀 붙잡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양하며 나가면 말씀기도찬양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시는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같은 이치인데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신의 생각이나 세상적 방법이 아닌 말씀 붙잡고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하시고, 하나님의 방법이 나타난 것이며, 그 이면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영의 일하심이 있다. 죄와 세속과 자기 소견의 사람이 아닌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사람과 함께 오늘도 하나님께서 하신다.
 
오늘의 기도
말씀대로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말씀대로 일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을 목도하고 경험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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