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가정 예배

3월 18일 ~ 23일 가정 예배

ree610 2024. 3. 17. 15:07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본문 : 히 3:1~3
찬송 : 265장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고 말했다.
무엇을 생각하고 사느냐가 생명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말씀이다. 무엇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지 오늘 말씀이 해답을 주고 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첫째로, 믿음의 사람이 된다. 이 세상에 제일 외롭고 불안한 사람은 믿을 것이 없고 의지할 것이 없고 기댈 것이 없는 사람이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언제나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이 생기고 희망이 생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분은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걱정 없이 살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사랑과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이기 때문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믿음의 사람이 된다.


둘째로,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사도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사명을 가지시고 하늘에서 이 세상의 역사 안으로 보내심을 받은 분이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구원해 주시려고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그러므로 사도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놀라워 감사하게 될 뿐만 아니라, 주님에게 내가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았음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내가 있게 되었다. 이것을 생각하면 보냄 받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셋째로, 사랑의 사람이 된다. 대제사장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요, 화해자를 가리키는 말씀이다. 감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이지만 그러나 주님께서 친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죄를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은혜를 받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말한다. 우리의 생명의 값은 예수님의 목숨 값으로 치루었기에 갚을 수 없는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보물을 주셨다. 고난을 당할 때도, 슬플 때도, 낙심 될 때도, 실망스러운 때도, 분노가 일어날 때도, 비난을 당할 때도, 실패할 때도, 화가 일어날 때도, 비난을 당할 때도, 실패할 때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그러면 다시 삶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다.

오늘의 기도
우리의 눈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의 귀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날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화-샘을 파는 사람들
본문 : 창 26:16~20
찬송 : 312장

 

이삭은 족장들 중에 평강을 누린 사람이다. 아브라함처럼 개척자의 이미지가 아니며 야곱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삭은 순리를 따라 살아서 축복을 누린 사람이다. 싸우고 다투지 않았으나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았다. 흉년에 이삭은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나안에서 애굽은 언제나 福地(복지)였다. 사시사철 나일강이 흐르는 애굽은 기근이 들 때마다 쳐다보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하나님은 애굽으로 가지 말고 지시한 땅에 머무라고 하신다. 그랄에 머물며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축복을 흉년에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것으로 누린다. 그러나 이삭의 축복은 그랄왕의 시기를 받아 애써 가꾼 옥토를 버리고 떠나게 된다. 물 없는 광야에 기근까지 겹친 가나안땅에서 이삭은 우물을 판다.


성도들 가운데 큰 기근을 만난 분들은 당연히 애굽을 쳐다본다. 옛날을 추억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세상방법으로 살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약속의 땅에 머무르시기 바란다. 그 약속의 땅에서도 내몰릴 때가 있다. 그래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란다. 이삭은 그랄에서 쫓겨난 후에 샘을 판다. 물이 나왔다.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물은 그랄의 목자에게도 필요하다. 그랄 목자들이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한다. 이삭은 싸우지 않고 우물을 내어준다. 바보 같다. 다시 우물을 판다. 또 물이 나온다. 또 그랄 목자들이 자기들의 우물이라고 한다. 이삭은 또 양보한다. 정말 바보이다. 이제는 샘을 팔만한 곳이 별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다시 샘을 판다. 물이 나올 만한 골짜기는 없다. 넓은 들판 한 가운데 그냥 샘을 판다. 그런데 물이 나온다. 들판은 넓어졌고 농사를 더 많이 지을 수 있었다. 내가 팠지만 그 물을 기꺼이 양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기근의 시기였다.

 

오늘 한국교회는 큰 기근을 만났다. 물이 나오는 샘을 서로 자기 것이라고 우기고 남의 샘까지도 탐을 내는 시기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샘을 파는 사람을 축복하신다.

먼저 기도의 샘이다. 오늘은 기도의 샘을 깊이 파는 사람이 드물다. 기도는 보이지 않는 물줄기를 볼 수 있게 한다. 땅에 감추인 물을 찾게 한다.

다음은 말씀의 샘이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기를 힘써야 한다. 이 시대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해야 한다. 세상의 철학과 인문학이 교회를 지배하려고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주님의 백성은 성경의 말씀에 엎드려야 한다. 모든 한국교회가 흐로봇처럼, 넉넉한 교회가 되시기를 축복한다.

오늘의 기도
기근의 시기에 기도의 샘을 파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의 샘을 파는 주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원수가 빼앗아도 낙심하지 말고 샘을 파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넉넉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수-행동하는 복음
본문 : 창 12:1~4
찬송 : 499장

 

2011년 빌보드 차트 14위 곡인 드레이크의 'The Motto Motto' 속 가사인 "You only live once(네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다)"에서 따온 말이 욜로(YOLO)이다. 미래나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우선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생과 오늘의 삶을 중시하는 욜로족으로 사는 삶은 결코 복이 아니다.


너는 떠나라,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그의 고향과 가족을 떠나야 했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부모의 집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며야 한다. 부모가 된 이들은 또 자녀들을 떠나보내 가정을 이루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자신의 사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성도들은 주일날 예배를 드리면 예배당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사명이 있는 삶의 자리로 가야 한다. 예수님도 하늘 아버지의 집을 떠나셨고, 33년 인생의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인생의 이치가 정들고 익숙한 곳을 떠나고,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는 데 있다. 인생은 결국 이생을 떠나야 하고, 가야할 곳이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생으로 하여금 "떠나라!", "가라!" 명하실까?
너는 복이 되리라! 하나님은 떠나고, 가야 하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보내시는 목적 첫째는 복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둘째는 그의 이름을 크게 떨치기 위함이었다. 셋째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복을 끼쳐주기 위함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세상의 소망으로 삼기 위해 "떠나라!", "가라!" 명하셨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난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서 거부가 되었고, 복의 근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떠나고, 지시하는 곳으로 나아갈 때 아브라함의 후손이 복음의 민족이 되었다.


행동하는 복음이 되라! 주님은 우리에게도 "떠나라!", "가라!"고 명하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신 말씀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는 명령이었다. 성도들이 가야 할 곳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다.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곳에서 복이 되고 복음이 되어야 한다. 행동하는 복음으로서 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안일하고 안주하려는 '욜로'의 울타리를 떠나 세상의 소망이 되는 사명의 자리, 행동하는 복음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이름이 크게 떨쳐질 것이다. 우리가 세상의 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생을 떠나야 하고 하나님의 품으로 가야 한다. 그 곳에서 복을 누리고, 그 곳에서 우리의 이름이 크게 되어야 한다.

오늘의 기도
아브라함처럼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 복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한 번 뿐인 인생,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면류관의 소망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목-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본문 : 눅 10:25~37
찬송 : 448장

 

한 때 교회는 우리 민족의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었다. 독립운동, 교육사업, 병원사업, 복지사업 등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일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제는 교육, 병원, 복지에 대해 정부가 모두 맡아서 감당하고 있다. 오히려 교회가 정부의 도움을 어떻게 받을까 연구한다. 한 목사님은 이런 탄식을 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우리의 교회가 세상에 빛이 될 만한 일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여기서 우리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된다. 바로 본질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우리가 뭘 하기를 원하시는가?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질문한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이 이 율법사에게 다시 질문하신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이 되었느냐?" 율법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답하신다. 다시 율법사가 질문한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대화를 통해 나온 이야기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이다. 본문으로 가보면 여리고를 지나가던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 길을 한 제사장이 지나간다. 놀랍게도 그냥 지나친다. 다행히도 레위인이 자나간다. 놀랍게도 이 레위인도 그냥 지나친다. 마지막으로 사마리아인이 지나간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 사람을 도와줄까? 당연히 그냥 지나쳐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인들은 유대인들의 눈에는 개나 돼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주도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자기 돈을 내어 주고 주막의 주인에게 부탁한다. 정성껏 치료를 해 달라고, 부족하면 다시 돌아와 갚겠다고 말한다. 놀랍지 않은가?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다." 더 이상 우리가 세상의 소금, 빛이 될 수 없는 것을 한탄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이웃이 되라고 하신다. 사마리아인처럼 하면 된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이웃은 신분이 아니다. 직분도 아니다. 지식도 아니다. 거리도 아니다. 이웃은 우리 안에 있는 가장 인간적인 마음이다. 가장 인격적인 마음이다. 가장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러나는 행동하는 믿음, 행동하는 지식, 행동하는 사랑임을 말씀하신다. 이웃이란 손을 내밀어 긍휼을 베푸는 것, 사랑을 베푸는 것,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 복음을 위해 나를 헌신하는 것이다.

오늘의 기도
우리가 섬기는 우리 교회, 직장, 가정에서 관심과 사랑으로 배려하는 좋은 이웃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금-이삭과 리브가처럼
본문 : 창 24:61~67
찬송 : 406장

 

이삭은 나이 마흔에 리브가와 늦은 결혼을 했다. 아마도 백세가 훌쩍 넘은 아버지 어머니 때문이 아니었을까. 사라 나이 아흔에 본 늦둥이 중의 늦둥이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127세에 죽을 때까지 37년 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결혼이 늦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100세 어머니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우리는 이삭의 성품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이삭은 어머니의 넓은 가슴에서 깊은 이해와 사랑을 배웠다. 그러니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칼을 빼 들었을 때 아무 말 없이 순종하지 않았겠는가! 그런 신실한 믿음의 사람 이삭은 어머니 사라가 죽은 지 3년이 지났을 때 드디어 리브가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됐고, 그 아름다운 장면이 창세기 24장에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삭은 리브가를 만나던 그날, 해 저물 무렵 들에 나가 묵상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의 결혼 문제로 장거리 여행을 떠난 종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또 결혼 문제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형통하게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에서 묵상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삭과 리브가는 멀리서부터 눈을 들어 서로를 바라보며 가까이 다가갔다. 65절을 보면 리브가는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오는 자가 누구냐?'라고 종에게 물었는데 번역에 조금 문제가 있다. 그보다는 '들판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와 같이 감탄이 섞인 말로 번역하는 것이 맞다. 마치 결혼식장의 신랑처럼 위풍당당하게 행진해오는 이삭을 보고, 리브가는 즉시 낙타에서 내렸고 너울로 자기 얼굴을 가리며 곧 남편이 될 이삭에게 예를 갖추었다.


이삭은 어땠을까? 이삭은 큰 기쁨으로 리브가를 인도하여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그녀를 들였고, 아내로 맞이하여 서로 사랑하였다. 그리고 이삭은 그제야 사랑하는 어머니를 떠나보낸 깊은 슬픔을 위로받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다.


가정은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는 곳이다. 그래서 가정은 합리적인 원칙보다는 사랑과 이해가 머무는 공간이다. 이삭과 리브가와 같이 부부도 서로 사랑함으로 위로를 주고받지만, 자녀도 역시 가정에서 부모 또는 형제자매와 위로를 주고받는다.
그런데 오늘 날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오히려 가정에서 받는 이들이 많이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그런 상처를 주기도 하고, 부모가 자녀에게 혹은 자녀가 부모에게 그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 가정은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위로 받았던 것처럼, 서로의 상처와 아픔을 위로해 주는 그런 복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늘의 기도
살면서 받아온 상처를 서로 위로하는 부부가 되고, 자녀는 부모에게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주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토-하나님의 은혜라
본문 : 고전 15:9~11
찬송 : 310장

 

예수님을 만난 후 복음의 사도로 부름 받은 바울의 생애를 보면 결코 쉽지 않은 생애였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이처럼 순탄치 않은 여정들을 지나오며 바울의 고백은 감사였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자신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 더 많이 힘쓰고 수고한다고 말한다.


은혜를 알게 되면 감사하게 되고, 은혜를 알게 되면 기쁨으로 헌신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 되길 원치 않으신다.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고백하며 살아가길 원하신다.


첫째로 어떻게 은혜를 알 수 있을까?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을 때 은혜를 알게 된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한다. 은혜는 나를 보는 만큼 깨닫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형편없는 존재인지,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으면 깨달을 수록 그만큼 큰 은혜를 알고 깨닫게 된다.


둘째로 은혜를 깨닫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알고 하나님을 자랑하는 사람이 된다. 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이 얼마나 많은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는가?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의를 자랑하지 않는다. 바울이 자랑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이다.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내가 아님을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께서 행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자랑해야 한다.


셋째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감사로 자신의 생애를 드린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하면 무엇이든지 기쁨이고 영광이다. 수고해도 힘들지 않다. 많은 것을 희생해도 아깝지 않다. 때로 고난을 당해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없으면 수고는 노역이 되고, 희생은 손해라 생각되고, 고난은 두려워 피할 것이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죄인됨과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어떤 것으로도 형언할 수 없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은혜로 가득히 채우는 절기가 되길 바란다.주님의 십자가 그 사랑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감사로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길 바란다.


오늘의 기도
십자가 아래서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고백하며 감사로 은혜를 나누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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