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이 하늘이다! - 최제우와 최시형의 삶과 가르침>
글쓴이 : 백승종
동학사상의 핵심을 더듬어 보는 시간입니다.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와 그 후계자인 해월 최시형, 이 두 분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해보렵니다.
자세한 내용은 물론 그분들의 말씀을 기록한 동학의 여러 경전들을 직접 읽어보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경전의 내용을 일일이 인용하거나, 하나씩 따져서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렵니다. 저는 그분들 생애와 사상을 나름대로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요. 오늘은 제가 공부한 내용을 대개 7가지로 간추려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이 이를테면 제가 가지고 나온 생각의 지도인 셈입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부터 짤막하게 말씀드리죠.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최제우와 최시형 두 분의 사상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아보는 것이 이번 강의의 요체입니다. 한 마디로, 저는 그것이 ‘자주적 근대화’ 또는 ‘자주적 근대의 성취’에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 강의의 핵심은 ‘자주적 근대’라는 말에 있습니다.
제 말씀을 듣고 여러분은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근대’라는 말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애매하지요. 게다가 그 앞에 ‘자주적’이라는 일종의 수식어를 붙이면 더욱 모호하지 않습니까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라고 생각해요.
그럼 강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근대’라든가 ‘근대화’라고 하면 보통은 산업화(industrialization)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서구의 근대는 산업화와 사실상 동전의 앞뒷면처럼 붙어있었으니까요. 근대 서구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공장식 상품생산체제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지요.
최제우와 최시형이라는 동학의 큰 스승들은 그럼 산업화를 추구하였던가요? 아니지요. 두 분의 가슴 속에는 공장, 기계, 근대적 산업 같은 개념이 들어 있지 않았어요. 그분들은 유럽의 생산 및 소비방식을 따라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단 말씀이지요. 요컨대 그분들이 바랐던 새 세상은 유럽식이 아니었다는 거지요.
눈치 빠른 분들은 제 말씀의 본뜻을 짐작하실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자주적 근대화’라는 것은 유럽화도 아니고 근대적 산업체계와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유럽식 근대화에 너무도 익숙하지요. 그래서 근대적 산업화를 떠난 근대화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최제우와 최시형 등이 ‘근대’의 문을 열어젖혔다만 그것은 어떤 근대입니까? 여러분은 제게 그런 질문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제 대답은 명확합니다. ‘관계의 질적 개선’이 바로 동학이 지향한 새로운 세상이었다고 말입니다. ‘인간관계의 질적 개선’이 동학의 근대화였습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되나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실은 복잡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순하게 말씀드리지요. 동학이 등장하기 이전의 한국사회에는 많은 사회적 모순이 있었지요. 지배와 종속이라고 하는 완강한 신분질서 또는 젠더의 차별이 존재하였습니다. 지구상 어디서나 대체로 그러한 문제점이 있었고, 실은 지금도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있어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는 사회적 관계의 불평등이 인간사회의 질곡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어둡게 만들었다는 거죠. 동학은 그런 사회적 모순에 민감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 최제우와 최시형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요즘 말로, 평등의 가치를 추구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평등’이란 말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동학 연구자들은 지금도 평등이란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지요.
저는 ‘평등’이란 용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이 용어는 물론 불교용어인데요, 거기에 우리는 서구적 가치인 정치, 경제적 평등을 덧칠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과거에 저는 제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최제우와 최시형이 서구적 의미의 평등을 주장한 것인가, 하는 것이었지요.
저의 대답은 부정적입니다. 그분들은 산술적 의미의 평등을 설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분들은 인간의 존귀함을 일깨웠다고 해야 옳습니다. 그분들이 평등을 주장했다기보다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존귀함을 강조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분들의 주장이 서구 계몽주의자들의 ‘평등’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다릅니다. 그분들은 ‘이퀄러티’(equality), 즉 동등한 자격과 권리를 강조한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것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지극히 존귀하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가령 당신도 내게는 한없이 존귀하고, 당신도 나를 한없이 존귀한 존재로 대접합니다. 극도로 귀한 당신과 극도로 귀한 나의 사이라서 평등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틀림없어요. 하지만 그분들이 주장은 A와 B는 평등하다에 초점이 있었던 것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 말씀의 결과로, 평등의 관계가 성립될 수 있지만, 그것은 평등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모두의 존귀함을 일깨웠다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점이 오늘 강의의 결론입니다. 동학사상의 본질은 인간의 존귀함을 일깨우는 데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 점을 똑바로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강의는 “존귀함”을 찾아나서는 정신적 여행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위해 제가 만든 지도의 첫 번째는요. 인간이 지극히 존귀하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사상적 계보를 알아보는 작업입니다.
최제우는 어느 날 갑자기 지극히 우연히도 인간이 지극히 존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을까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명시적으로 “존귀함”을 선포하게 된 데는 역사적 맥락이 있었습니다. 그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종의 계보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알고 보면, 중요한 모든 생각에는 그나름의 계보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제우와 최시형의 내면에 감추어진 생각의 계보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동학을 떠올릴 때 우리가 곧바로 부딪치는 또 하나의 개념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천주’라고 하는 개념이 문제입니다. ‘천주’, ‘하늘님’, ‘하느님’ 또는 ‘하늘’이라고도 부르는 존재가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바로 그 하느님이란 무엇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놔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점검입니다. 가령 최제우가 인간의 “존귀함”을 강조한 배경이 조선사회라고 하는 한반도의 내적 관계로만 설명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요.
제 생각에는, 동학의 등장에는 세계사적 흐름이 작용했다고 봅니다. 19세기 후반의 세계사적 맥락을 빠뜨리면 최제우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하겠습니다. 바로 다른 말로, ‘서구의 충격’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야 동학의 등장에 대한 입체적 이해가 가능하다는 말씀이지요. 18-19세기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에 엄청난 시련을 주었고,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었던 서구의 충격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네 번째로는, 동학에 보이는 융합적 성격을 거론하고 싶어요. 국내적으로는 그 사상에 계보학적 이유가 있었고, 바깥세상으로부터 비상한 충격이 작용해서 동학이 출범했다고 보는 것인데요. 이를 한 마디로 말하여, ‘융합적 창조’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동학의 사상을 별로 독창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습합(習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여러 가지 사상으로부터 장점을 모아서 섞어놓았다고 보는 것인데요. 저는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봐요. ‘융합적 창조’란 동학의 독창적인 가치를 인정할 때라야 나올 수 있는 표현이겠지요.
다섯 번째는 ‘개벽’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천지창조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낡은 질서를 전복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였다는 뜻입니다. 서두에서 말씀한 것처럼 이 강의의 중심은 ‘관계의 질적 전환’인 것입니다. 인간관계의 질적 전환은 질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드는 밑거름입니다. 그 점을 뚜렷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개벽’이라는 개념이지요.
여섯 번째는 동학의 조직에 관한 설명입니다. 앞에서 죽 이어진 제 설명을 듣다보면 여러분은 최제우와 최시형을 사상가로만 받아들이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마치 그분들이 고도로 정밀한 머리밖에 없는 컴퓨터처럼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듭니다. 물론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관계의 질적 개선을 꾀하였던 그분들이지요. 최제우와 최시형은 인간사회의 관계망(network)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분들이 구축한 인간관계망은 결국 어떻게 해서든 세상을 바꾸고자 한 노력의 소산이었지요. 더욱 구체적으로 말해, ‘포’와 ‘접’이라고 새로운 조직이 등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우리는 동학의 사상적 열매라든가 그 특징을 동아시아의 맥락에서 살필 것입니다. 한국역사를 한반도에 국한시켜서 이해하는 태도가 오래 전부터 지배적인데요.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과거 우리사회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들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에서 관찰할 때 더욱 선명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동학은 결코 우리 한국인들의 동학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아시아의 동학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저는 그 점을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함께 걸어갈 지적 산책의 지도는 대략 이상과 같은 순서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상의 지도를 쭉 폈다가 다시 접어봅니다. 제게는 이런 느낌이 들어요. 이 강의 시간에 우리는 사상의 계보학을 서술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 말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사상의 계보학이란 사상적인 측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인 맥락, 양적 연구라기보다는 질적 연구라는 특성을 가지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아래 그림: 1898년 5월 6일, 해월 최시형 선생은 교수형을 받고 산화하였습니다. 그 광경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