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박노해 시인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ree610 2024. 9. 26. 11:03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박노해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반듯하고 편안한 자세로

     시선을 바로 하고 나를 응시했다

     다정한 미소와 탁 트인 웃음이

     자연스런 표정과 진실한 감정이

     이야기 흐름 따라 물결치는 사이로

     생생한 기운이 우리를 감돌았다 

 

     분주한 세상을 배경으로 단 둘이만

     여기 지구 행성에 마주앉아 있는 듯

     우리는 서로에게 온 존재를 기울여

     서로 안에 잠든 무언가를 비추고 일깨웠다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의 맑은 파동과

     진심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어휘에

     난 살며시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생기 어린 바람결에 나를 맡겨 두었다 

 

     그렇게 소음이 흐르는 도심의 카페에서

     오롯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몰입하는

     속 깊은 만남을 갖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스마트폰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잘 보이려 눈치 보며 맞추지도 않고

     대화 사이사이 찾아드는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나 꺼내 놓지 않고 

 

     그렇게 서로를 ‘만나버림’으로

     삶의 경로를 변경하고 결단하는

     깊숙한 떨림이 살아있는 사람 

 

     실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긴 하루의 생이었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詩 232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