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박노해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반듯하고 편안한 자세로
시선을 바로 하고 나를 응시했다
다정한 미소와 탁 트인 웃음이
자연스런 표정과 진실한 감정이
이야기 흐름 따라 물결치는 사이로
생생한 기운이 우리를 감돌았다
분주한 세상을 배경으로 단 둘이만
여기 지구 행성에 마주앉아 있는 듯
우리는 서로에게 온 존재를 기울여
서로 안에 잠든 무언가를 비추고 일깨웠다
내면에서 나오는 음성의 맑은 파동과
진심이 담겨 있는 살아있는 어휘에
난 살며시 눈을 감고 미소 지으며
생기 어린 바람결에 나를 맡겨 두었다
그렇게 소음이 흐르는 도심의 카페에서
오롯이 서로를 향해 온전히 몰입하는
속 깊은 만남을 갖고 있었다
오늘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스마트폰 한번 들여다보지 않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고
잘 보이려 눈치 보며 맞추지도 않고
대화 사이사이 찾아드는 침묵이 어색해
아무 말이나 꺼내 놓지 않고
그렇게 서로를 ‘만나버림’으로
삶의 경로를 변경하고 결단하는
깊숙한 떨림이 살아있는 사람
실로 충만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긴 하루의 생이었다
- 박노해 시인의 숨고르기 ‘모처럼 사람을 만났다’
시집 『너의 하늘을 보아』 수록 詩 232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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