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맞아...헌법공부 잠깐]
우리 헌법에서 가장 핵심규정은 제10조입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는 것입니다.
한번 찬찬히 쉽게 읽어봅시다. 모든 국민이라 했지만, 인권의 주체는 한사람 한사람입니다. 헌법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존엄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헤아릴 수 없이 가치있는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세파 속에 부대껴도 당신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침해받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인권은 남이 침해할 수 없고, 남에게 넘길 수도 없습니다. 당신의 인권은 하늘로부터 받은 천부인권이고, 태어날 때부터 온전히 가지고 있는 생득권입니다. 사람 나고 국가가 다음입니다. 당신의 인권은 국가로부터, 국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게 아닙니다. 국가도 당신의 인권을 뺏아갈 수 없습니다. 국가는 당신의 인권의 내용을 정하는 게 아니고, 당신의 인권을 다시한번 확인해주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때로는 절망에 빠진 나에게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준다면...없던 힘도 생기도 용기백배하지 않을까요? 오늘날 우리의 인권장전은, 당신은 누구보다도 존엄하고 가치있는 인간이고, 다른 인간과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나는 타인 누구에게도 굴종하지 않고, 평등합니다. 나는 자유롭고, 스스로 결정하고, 내 의지에 따라 행동할 수 있습니다. 내 인권이 소중하다면, 남의 인권도 나와 똑같이 소중하게 취급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엄하고 가치있고, 차별없이 평등하고, 속박없이 자유롭고,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고, 공공생활에 똑같이 참여하고, 우리가 대표를 뽑고...이것이 헌법의 약속이고 명령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헌법의 인권조항을 죽 읽고는, 아 이게 오늘날의 복음이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법전화한 것이구나 하고 감탄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 성경의 복음은 예수쟁이에게만 통용되지만, 헌법과 인권규범은 어느 종교를 믿든,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가리지 않고, 구속력 있는 규범으로 통용됩니다. 그러니 그 영향은 어쩌면 성경보다도 더 큽니다. 예수님을 비롯한 인류의 스승들의 복음을 오늘날 비종교적 언어로 규범화한다면, 그게 프랑스혁명에서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우리 헌법의 인권규범 정도로 표기화될 것입니다.
이러한 인권을 흔히 천부인권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 헌법에서 인권을 “불가침”이라고 했을 때, 거기서 불가침이란 “천부, 불가침, 불가양”을 줄인 말이라 해도 됩니다. 인권을 말할 때, 천부인권, 자연권, 기본권 이런 말을 씁니다. 천부인권이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권이란 말인데, 미국독립선언문에 보면 “All men are created equal”이란 말이 나옵니다. 정식으로 하면 All men are created equal by the Creator“가 될 것입니다. 왜 인간이 평등하냐 하면, 모든 인간이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조물주에 의해 평등하게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가의 종교중립, 국교는없다....는 기준에 따르자면, 여기서 천부, 자연...이란 말은, 인공의 투자가 없이도 태어날때부터 가진 권리(birth-rights), 사회가 아니라 자연 그대로부터 받은 당연한 권리쯤이 되겠습니다.
우리 헌법의 규정을 읽어보면 한가지 오해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제1조),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10조)라고 읽으면, ‘에이 아닌데’ 이런 반응이 일어납니다.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제11조)라고 읽으면, 유전무죄 무전유죄 몰라? 하고 반발심이 생겨납니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전혀 아닌 것이냐, 우리 국민은 법앞에 전혀 평등하지 않냐 이렇게 반문하면 그렇게까진 말할 수 없지 합니다. 우리 법령 문구상 “이다”라고 하면 “이어야 한다”고 읽어야 맞는 해석이 됩니다.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다”는 규정은 정확히 독해하자면,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All citizens are equal before the law 가 아닙니다. All citizens shall be equal before the law. 즉 평등하다가 아니라 평등해야 한다, 자유롭다가 아니라 자유로와야 한다는 겁니다.
어떻게요? 주권자인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고, 존엄하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투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헌법이 자동적으로 인권을 갖다주는 것이 아니고, 헌법규범상 인정된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유하자면, 여기서 헌법상의 인권은 채권 같은 것입니다. 헌법은 국민들에게 인권이란 채권을 갖고 있다고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채권을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서, 엄청 노력해야지요. 때로는 투쟁과 희생을 불사하면서요. 현재 현금처럼 갖고 있는 권리도, 우리 조상들이 엄청난 희생을 통해 채권을 현금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의 인권규범은, 주권자로서 국민이 인권의 현금화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함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장애인단체에서 잘 쓰는 구호 하나를 가져오자면, "우리가 행동하니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지요.
ㅡ 한인섭 교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