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좋은 설교

문익환 목사 30주기 추모예배

ree610 2024. 1. 16. 07:50

故문익환 목사 30주기 추모예배를 드리고
모란공원 주차장에서 기념 문화제를 하였다.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고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다."
- 문익환 .

2024년 1월 13일, 마석모란공원, 문익환 목사 3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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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 문익환목사30주기 추모예배

늦봄의 꿈

본문 : 이사야서 2장 4절
주님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원전 8세기, 칼의 문화가 창궐했을 때, 예언자 ‘이사야’는 꿈을 꾸었습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서로 칼로 공격하지 않는 꿈을 꾸었습니다. 다시는 군사훈련을 하지 않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라들 사이의 분쟁과 백성들 사이의 갈등을 하나님이 평화롭게 해결해 주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에는 커다란 믿음이 깔려 있었습니다. 칼과 창의 문화를 끝내지 않고는 절대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믿음이었습니다. 칼과 창의 문화를 보습과 낫의 문화로, 즉 공존과 상생의 시대로의 대전환이 없이는 결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이 그 꿈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구호가 하늘을 찌를 때, 변방 갈릴리 출신의 ‘예수’도 공존과 상생의 꿈을 꾸었습니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오히려 잘 대접하고, 저주하는 사람을 축복하며,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도리어 기도하는, 그렇게 서로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에 근거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백향목처럼 우뚝 솟은 힘의 사람들이 아니라, 겨자풀처럼 보잘 것 없는 민중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냉전의 논리가 이 한반도를 온통 짓누를 때, 늦봄 문익환 목사님도 꿈을 꾸었습니다.
국군의 피로 뒤범벅 된 북녘땅 한 삽, 공산군의 살이 썩은 남녘땅 한 삽씩 떠서 합장지내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팔뜨기가 된 우리의 눈이 제대로 돌아와 산이 산으로, 냇물이 냇물로, 하늘이 하늘로, 나무가 나무로, 새가 새로, 짐승이 짐승으로, 사람이 사람으로 제대로 보이게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휴전선 원시림이 압록강 두만강을 넘어 만주로 펼쳐지고, 한려수도를 건너뛰어 제주도까지 뻗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뛰놀고, 새가 되어 신나게 하늘을 날며, 물고기가 되어 펄떡펄떡 뛰며 강과 바다를 누비는 어처구니없는 꿈을 꾸었습니다.(문익환,「꿈을 비는 마음」中에서) 분단체제가 만들어 놓은 모든 장벽들이 허물어진, 공존과 상생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요. 꿈이라는 걸 꾸고는 있는지요.
요즘 시대의 분명한 특징, 일관된 분위기가 있습니다. 참 불행하고 비참한 건데, 머리 좋은 사람을 맹신한다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판단하고, 머리로만 계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시험만 잘 본 사람들이 정치도 하고, 검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종교인도 되고, 선생도 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망가지고, 삭막해지고, 메말라 버린 건 아닌지요.
‘스펙’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Specification’의 줄임말 ‘스펙’은 사실, 무기의 성능과 제원을 설명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단어를 ‘사람’에게 붙힙니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서운 시대입니까. 생명을 기계나 물건처럼 다루고 있다는 거죠. 사람을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머리 좋은 사람만을 맹신해서 그런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녀들을 모두 머리만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죠. 높은 점수를 받아 명문대에 들어가는 머리 좋은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어릴 때 때부터 수십 개의 학원으로 뺑뺑이 돌리고, 비싼 과외를 시키면서 스펙만 쌓고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꾸지 못하는 겁니다. 꿈을 꿀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머리도 똑똑하면 좋겠지만, 사실 꿈을 꾸려면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필요합니다. 문익환 목사님도 자주 쓰고 강조한건데, 바로 성경 에스겔서 11장 19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표현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을 품고, 아무리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해도, 그것을 이루고 실천할 뜨거운 가슴,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늦봄 문익환 목사님의 30주기입니다.
늦봄으로 산다는 건, 꿈을 꾸는 것입니다.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꿈을 꾸는 것입니다. 늦봄에게는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있었기에, 나라와 민족과 겨레에 대한 뜨거운 가슴을 소유했고, 자기 것을 아낌없이 내어줄 만큼 넓은 가슴이 있었으며, 모든 사람과 생명을 뜨겁게 사랑했던 마음을 지녔습니다.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히 넘을 수 없었던 휴전선 철조망도 훌쩍 뛰어넘는 꿈을 꾸었고, 끝내 그 꿈을 실행했던 것입니다.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치며 전쟁공포를 부추기는 막장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분단체제에 기생하며 배를 불리는 이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돈을 신처럼 숭배하는 이들이 우글거리고, 건강한 노동보다 불로소득을 더 좋아하는 이들이 설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혐오함으로써 자기 정당성을 찾는 이들이 판을 치고, 사람을 차별하고 함부로 대하는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검찰독재, 이 야만의 시대에 우리 꿈을 꿉시다. 예언자 이사야가 꾸었던 꿈, 예수가 꾸었던 꿈, 늦봄이 꾸었던 꿈을 다시 꿉시다.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공존과 상생의 꿈을 다시 꿉시다.

남북의 어선이 공동어업구역에서 남북한 군인의 경호를 받으며 사이좋게 낚시를 하는 꿈을 꿉시다. 온 가족이 손잡고 평양으로 소풍가서 냉면을 맛보고, 백두산 둘레길을 걷는 꿈을 꿉시다. 우리 청년들이 전쟁과 이념대결에 내몰리기보다, 자전거 타고 휴전선을 건너고, 북한을 거쳐,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배낭여행 가는 꿈을 꿉시다.
서로의 살을 찢어야 했던 분단 70년 고통의 시간을 뛰어 넘고, 서로를 향해 끝없는 살기와 저주의 토악질을 해댔던 야만의 시절도 뛰어 넘고, 지긋지긋한 반목과 갈등의 사슬을 완벽하게 끊어내고, 남과 북 사이에 쌓였던 불신과 불통의 높은 바벨탑이 허물어지는 꿈을 꿉시다.
그 꿈, 우리 함께 꿉시다.

/ 홍승헌 (한빛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