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May Day)을 맞아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주관하는 ‘교직원 수요예배’(2023.5.3.)에 초청을 받아서 전한 설교의 내용을 공유합니다.- 정종훈 목사(연세대)
하나인 우리 공동체 (고린도전서 1:10)
노동조합 주관의 교직원수요예배에 참석하신 연세의료원 가족 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제가 의료원 원목실장겸 교목실장의 보직 생활 6년 6개월을 마치고, 신촌캠퍼스로 복귀한 지 2년 2개월이 지난 시점에 노동조합의 초청으로 교직원수요예배에서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이 참 기쁘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매년 5월 1일 노동절 전후한 주간에 노동조합이 교직원 수요예배를 주관하는 전통은 매우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노동의 의미와 노동자의 존엄성, 노사협력의 필요성 등을 돌아보고 다시 결단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노동절 May Day는 산업화와 함께 자본주의가 급성장하던 시절,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으로 고통당하던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을 법제화하기 위해서 총파업에 들어갔던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기업의 최대이윤을 창출하는 기계처럼 취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12시간에서 16시간을 노동하고, 1달러 정도의 일당을 받을 만큼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동환경을 해소하고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8시간 노동의 법제화를 요구하며 서로 연대했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쟁취하며, 노동조건과 노동환경 전반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4.19혁명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의 열망이 컸던 시기에 식당과 청소 영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중심으로 ‘보다 나은 생활과 권리를 찾기 위하여’ 1960년 7월 21일에 창립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최초로 조직된 노동조합이었는데,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정권에 의해서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강제로 해산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강제 해산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뜻을 모아 1963년 2월 9일 다시 결성함으로 대한민국 의료계에 노동조합의 씨앗을 심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국가비상사태 선포로 인해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빼앗겼지만, 청소분회, 원주기독분회 등을 결성하며 조직을 확장했고, 간호사들이 집단으로 가입하면서 병원노동조합의 위상을 명실상부하게 갖추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은 대한민국 의료계 최초의 노동조합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머물지 않고, 의료계 전체를 여전히 선도하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2022년 12월 28일, 노조위원장 선거 3선에 성공한
권미경 위원장께서 노동조합 홈페이지에 올린 인사말을 읽어보았습니다. 첫째, 의료계 최초의 노동조합이자 단일 노동조합으로는 최대 규모인 노동조합의 위원장으로서 그 책임을 실천하며 함께 잘 사는 길을 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노동조합의 활동과 투쟁이 ‘함께 하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사회의 아픈 곳을 돌보는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일과 삶의 균형 아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터를 지향하며 언제나 현실에서 시작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최고 수준의 임금과 복지 못지않게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일터, 충분한 휴식을 통해 전문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일터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셋째, 공존의 가치와 즐거움을 잊지 않으며 연세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될 것을 약속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일터에서 조화와 타협으로 ‘진정한 연대’를 실현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인사말의 내용을 읽어보니, 권미경 노조위원장님의 3선이 우연이 아니라, 그분의 비전과 식견과 열정이 확고히 받혀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2014년 9월, 제가 연세의료원의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으로 취임한 후, 정남식 의료원장님께 처음으로 제안했던 것이 ‘직원수양회’였습니다. 교육 위주로 운영되던 ‘직원수양회’가 2007년 노조파업 이후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저는 연세의료원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세브란스의 공동체성을 강화하며, 일에 치인 직원들을 힐링할 목적으로 ‘직원수양회’를 부활하자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저는 예산을 아끼지 말고 직원들이 좋아할 ‘직원수양회’를 만들어보라는 의료원장님의 지지와 격려를 받으며 첫 번째 준비모임을 원목실장실에 소집했습니다. 관련 부서로 원목실과 노동조합, 조직문화팀과 아카데미팀으로 하고, 각 부서의 책임자들이 심도있게 협의했습니다. 그 결과, 교육적인 프로그램보다는 힐링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기로 했고, 드디어 2015년 4월 첫 번째 직원수양회를 양양 솔비치에서 개최했습니다. 그후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1회씩 개최한 직원수양회는 120명에서 150명의 직원들이 참석해서 만족도 96점 이상인 행사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습니다.
저는 2005년 노동조합 15대 조민근 위원장님과 연세의료원 13대 지훈상 의료원장님께서 임금을 협약하며 마련했던 ‘세브란스 노사공익기금’이 우리 세브란스병원을 세브란스답게 하는 기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기금은 세브란스병원의 노사 전체의 위상을 드높일 뿐 아니라 세브란스의 섬김과 나눔과 돌봄의 정신을 실천하기에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금으로 전개하는 활동은 인근 각처의 복지기관에 기금을 직접 후원하는 활동, 연세대학교 설립자 언더우드 목사의 자부인 에델 언더우드 여사가 고아 청소녀들을 위해서 만든 세브란스 자매기관 에델마을에 물품과 비용을 제공하는 활동, 어려운 지역의 주민들을 찾아가 김장김치를 나누고 이불을 나누고 직접 손뜨개질해서 만든 물품을 나누는 활동, 지방의 특정 지역을 정해서 좋은 농산물을 적당한 가격에 공동 구매하여 교직원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는 활동, 의료혜택이 열악한 지역주민을 위해서 건강검진과 무료로 진료하는 활동, 서울시 여러 구청의 협조를 받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에게는 교육비나 교복을,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들’에게는 생활자금이나 휠체어를 지원하는 활동, 연세대학교 학생들 가운데 점심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 50명에게 매학기 점심 식권 비용 3,200만원을 전달하는 활동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활동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작년 2022년 8월 8일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병원 노동조합이 체결한 임금협약의 내용에는 기본급 4% 인상과 ‘주 4일제 근무’ 시범운영, 협력업체 직원들의 진료비 감면을 위한 복지기금 조성 등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기대와 염려 속에 관심을 모았던 것은 ‘주 4일제 근무’였습니다.
그런데 매우 감사한 일은 실험적으로 운영된 세브란스 병원의 ‘주 4일제 근무’가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언론의 보도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병동당 5명씩 총 30명을 대상으로 주 4일 32시간 근무 체제를 6개월마다 순환하고, 참여자의 급여는 기본급 20%를 삭감해서 비참여자와 형평성을 맞추며, ‘모성보호’ 대상과 ‘환자 중증도가 높아 사직률이 높은 병동 직원들을 주 대상으로 ‘주 4일제 근무’를 실험했는데, 참가한 직원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아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는 것이 여러 언론보도의 핵심이었습니다.
작년 임금협약 직후 권미경 노조위원장께서 저에게 전화를 걸어 ‘주 4일제 근무’ 시범운영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염려했던 ‘주 4일제 근무’가 벌써 한국 의료계와 산업계의 이정표가 될 것을 생각하니, 우리 모두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라 여겨집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전서 1장 10절 말씀은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노동조합이 ‘하나인 우리 공동체’를 추구하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모두가 같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같은 말은 같은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세브란스가 지난 138년의 역사 동안 일관되게 이어온 것은 기독교적인 정체성과 함께 세브란스의 정신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세브란스의 정신 위에 굳건히 설 때, 우리는 같은 생각으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세브란스의 정신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사명을 부과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물질과 재능을 아낌없이 나눈다는 것입니다. 녹록지 않은 의료계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라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담대하게 창의적으로 개척한다는 것입니다. 구성원들 간에 서로 협력하고 시너지를 만들며 상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브란스의 정신을 체화시켜 ‘같은 생각’ 위에서 ‘같은 말’을 하고자 할 때,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노동조합은 ‘하나인 우리 공동체’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 가운데 분쟁을 없이 하라.”는 것입니다.
분쟁은 줄을 세워 파당을 만들 때 발생합니다. 출신 학교나 출신 지방으로 줄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의료원장 선거나 노조위원장 선거 때 줄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선배들은 후배들을 자기 줄 앞에다 세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줄을 세워 만들어진 파당은 다른 파당을 잘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 파당끼리만 일을 도모하고, 다른 파당을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파당을 넘어서 협력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교회에도 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신데, 어찌하여 이렇게 찢기어질 수 있느냐며 책망했습니다. “바울이 무엇이고, 아볼로가 무엇이며, 또 게바가 무엇이냐” 질문하면서,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이처럼 줄을 세워 파당을 만들지 않으려고 할 때, 그래서 분쟁하지 않고 힘을 하나로 모을 때,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 노동조합은 ‘하나인 우리 공동체’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셋째는 “온전히 합하라.”는 것입니다.
온전히 합하는 것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데 그 비결이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언제나 최고 최선일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언제나 형편없고 고려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당장은 다르더라도, 각자의 장점을 모아서 대화하고 타협하면, 언제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 노동조합은 마음을 열어 대화하며, 모두에게 최선이 되는 타협안을 만들기 위해서 언제나 노력해 왔습니다.
어떤 노동조합이든 어떤 사측이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을 고집한다면, 전체 파업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합하는 최고의 비결은 역지사지에 있습니다.
연세의료원의 리더들은 세브란스 노동조합의 입장이 되어보고, 세브란스 노동조합은 의료원 리더들의 입장이 되어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서로 역지사지하며 합고자 할 때,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 노동조합은 ‘하나인 우리 공동체’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연세의료원 가족 여러분,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하며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는 사도 바울의 충고가 우리 연세의료원과 세브란스 노동조합의 지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한 분 한 분과 원내 각 부서, 각 기관 위에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언제나 함께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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