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어머니의 삶

ree610 2021. 10. 23. 17:06

《 어머니의 삶 》

咸鏡道 會寧에서 結婚하고 서울 변두리로 온 어머니의 一生은 毒한 삶이었다.

적은 수익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 같았다.
平生 옷 한 벌 제대로 해 입는 걸 보지 못했다.

初等學校나 中學校 時節學校로 오는 엄마의 옷은 장 속에 오래 묵었던 옛날 옷의 접힌 주름이 그대로 보였다.

어머니는 옷이 없어서
學父兄 會議에 오기가 꺼려진다고 했다.

어머니는 먹는 것에도 吝嗇했다.
[인색:재물을 지나치게 아낌]

生鮮이나 과일, 달걀이~
어머니의 입 속에 들어가는 걸
보지 못했다.

고기도 먹지 않았다.
찬밥과 오래된 김치 조각이
어머니의 食單이었다. 

水銀柱가 零下 십도 아래로 내려가는
一月의 칼바람 치는 날이다.

煉炭을 때는작은 무쇠 煖爐의
空氣구멍은 恒常 닫혀 있었다.

내가 공기구멍을 조금 열어놓으면
어머니는 다시 와서 그걸 닫아버렸다.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한겨울에도
불기가 없는 방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방 안의 구석에 놓아두었던 그릇의 물이
얼음덩어리로 변해 있기도 했다.

初等學校 4學年 時節
나는 어머니와 처음으로 부딪혔다.

거리가 얼어붙은 겨울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찬바람이 이는 도로가에서
電車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천천히 뛰는 정도로
느릿느릿 가는 전차는
삼십 분이 넘도록 오지 않았다.

얇은 신발 속의 발가락이
冷氣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버스를 타고 가자고 졸랐다.

어머니는 나를 보고
정신 빠진 놈이라고 욕을 했다.

당시 버스비는 오원이고
전차는 그 반값인 이원 오십 전이었다.

아침마다 學校를 갈 때
어머니는
오원짜리 은빛 銅錢 하나를 내게 주었다.

그 돈으로 전차표를 사서 학교를
갔다 오라는 것이었다. 

추우니까 자주 停留場으로 오는 버스를 타자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精神이 썩은 놈이라고 욕을 했다.

그 추운 자리에서
벌로 한 時間을 더 서 있으라고 했다.

전차가 와도 어머니는 타지 않았다.

칼바람이 부는 거리에서
나는 한 시간 동안
서 있는 벌을 받았다.

어렸던 나는 도무지 그 벌이
納得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自家用을 타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나는 그 버스조차 탈 資格이 없다는
事實에 反抗期가 일었다. 

어머니한테 벌을 받은 다음 날부터
나는 버스도 전차도 타지 않았다.

신설동에서 광화문까지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걸음으로
걸어갔다가 또 걸어왔다.

그렇게 하면 은빛 나는 동전 하나가 생겼다.

나는 마당 한구석에 조그만 깡통을 묻어놓고 每日 學校에서 돌아오면
그 깡통에 은빛 동전 하나씩을 넣었다.

먼 길을 걸어갔다 오면
동전 한 닢을 버는 셈이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다. 

어느 날 어머니에게 銅錢이 가득 든 깡통이 發見됐다.

어머니는 그걸 내가 도둑질한 것으로
確信하고 얼굴이 憤怒로 시퍼렇게 되어 있었다.

나는 事實대로 어머니한테 말하고
돈이 좋으면 그 돈 다 어머니가 가지라고 했다.

어머니는 외아들인 너를 敎育시키려고 했던 건데…라고
혼잣말 같이 말하면서 沈默했다. 

내가 辨護士를 開業하고 나서부터는
매달 얼마씩의 용돈을 어머니에게 드리기
始作했다.

그 돈으로 親舊나 이웃에게 밥도 사고
便安히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平生 徹底했던 節約하는 習慣은
버리기 힘든 것 같았다.

어머니의 삶의 형태는 마찬가지였다.

다만 달라진 점이 엿보였다.

동네에서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쌀집에 부탁해서 쌀가마를 보내기도
하는 걸 알았다.

聖堂에서 어떤 行事가 있으면
손이 크게 獻金을 한다는 소리도 들려왔다.

2016년 새해가 밝아왔을 때였다.
어머니는 나의 세배를 받으면서 말했다. 

“내가 이제 아흔 살이다.
滿洲에서 戰爭을 겪었고,
大東亞 戰爭을 겪었고,
6·25 때도 남아서 오래도 살았다.
산다는 게 이제 지겹다.”

어머니는 이제 스무 살 때 北에서 헤어진
돌아가신 父母님 곁으로 가고 싶으신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두 달 후였다.
어머니가 銀行에서 찾은 手票 두 장을 내게 주면서 말했다.

“네가 나한테 준 용돈을 거의 쓰지 않고 모아뒀다. 오억 원을 채우려고 했는데 모자란다. 아무래도 그렇게 못할 것 같다.”

어머니는 내게 받은 용돈을 쓰지 않고 돌려주었다.

어린 시절 깡통 속의 동전들을어머니께 返納했던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 다음 달 어머니는 저 世上으로 가셨다. 

요즈음 내가 깨달은 게 있다.

적은 수익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먼 길을 간다.
그러면서도 永生을 얻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도 땅에서 떼지 않으려고 한다.

記憶 저쪽에서 初等學生인 내가
은빛 동전 한 닢을 위해 먼지가 날리는 우중충한 거리를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老人이 된 이제는 眞理를 위해
聖經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엄 상익 / 변호사 / 경기고, 고려대 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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