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라파엘로, 겟세마네 동산의 고뇌, 24*29cm, 150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진정 피하고 싶었던 죽음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고뇌가

ree610 2024. 10. 10. 14:40

라파엘로, 겟세마네 동산의 고뇌, 24*29cm, 1504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진정 피하고 싶었던 죽음을 앞두고 그리스도의 고뇌가 깊다. 한적한 동산, 주님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십자가의 죽음이 인생의 길목에서 아른거린다. 그리고는 마침내 치 떨리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스도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호소한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소서! 그러나 매정하게도 하나님의 응답은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었다. 두렵고 떨리는 운명의 잔을 천사가 나르고 있다.

주님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두 손을 모은 채 그대로 이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인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죽음의 잔을 두 눈 크게 뜨고 응시한다. 역사를 구원하는 대속의 잔을 나르는 천사는 야속하게도 너무 담담하기만 하다.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의 삶도 내 인생이다.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이요 거룩한 섭리다. 내 인생은 그 누구의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주인이라는 현대정신이 기독교의 이 깊은 섭리를 수용할 수 있을까.
기독교 복음이 놓인 어려운 지점이다.

그리스도라도 이 잔을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어 제자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갔건만,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들은 스승의 고뇌를 홀로 남겨둔 채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베드로는 아예 누워버렸고, 야고보와 요한은 앉은 채로 잠들어 버렸다. 세상 무거운 것이 눈꺼풀임을 어찌하랴. 온종일 예수님 따라다니며 지칠 대로 지친 제자들, 깨어 있으라,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는 선생님의 다급하고 절절한 호소에도 끝내 무너져내리는 눈꺼풀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단한 일이냐. 그리고 얼마나 자괴감 드는 삶이냐.

그래도 화가는 이 한심한 제자들에게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죽음을 앞둔 스승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이 모자란 제자들 머리 위에 아우라(후광) 둘러주는 것을 빼먹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 그저 죄송하고 감사할 뿐이다.

- 이훈삼 목사 (성남 주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