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권대웅- 떨어지는 빗방울에게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ree610 2024. 9. 6. 06:35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

-권대웅-

떨어지는 빗방울에게도 기억이 있다
당신을 적셨던 사랑
아프지만 아름답게 생포했던 눈물들
신호등이 바뀌지 않는 건널목에서
비 맞고 서 있던 청춘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마다
기우뚱 하늘 한 구석이 무너지고
그 길로 젖은 불빛들이 부푼다
흐린 주점에서 찢었던 편지들이
창문에 타자기의 활자처럼 찍히는
빗방울의 사연을 듣다보면
모든 사랑의 영혼은 얼룩져 있다
비가 그치고
가슴이 젖었던 것은 쉽게 마르지 않는다
몸으로 젖었던 것들만이 잊힐 뿐이다
밤거리를 맨몸으로 서성거리는 빗방울들
사랑이 떠나간 정거장과 쇼윈도의 창문과
나무들의 어깨 위로
구름과 놀던 기억들이 떨어진다
국화 허리 같은 당신이 떨어진다
가을비는 흐르지 않고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