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의 허망함
"순진한 강남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강남 대형교회에 나가는 기독교 신자들의 얼굴에서 순진함을 본다. 그들은 신앙의 사람으로서 악의가 없고, 착해 보인다. 그들은 영성 일기를 쓰며 자신의 욕망을 헤아리고, 영성적 순결을 하루하루 점검한다.
이들은 주일마다 아주 순수한 표정으로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아멘 아멘을 반복한다. 순진함으로 가득한 사람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의 삶이라고 굳게 믿고, 그렇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들은 다투기 싫어하고, 욕설을 하지 않으며, 더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아주 순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순진함에는 이중 삼중으로 포장된 누추한 욕망이 겹겹이 담겨 있다. 순진한 신자가 매일매일 영성일기를 쓰면서 찾아내는 악은 고작해야 사소한 자기 욕망이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고백하는 것이 비뚤어진 성욕이다. 큰 교회에는 아름다운 여인, 멋진 사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다른 교회 교인들보다 더 자주 안목의 정욕이 자극받기 때문이다.
이들의 순진한 얼굴 이면에는 시기와 질투도 감추어져 있다. 큰 교회에는 돈 많은 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 고관대작들도 많아 저절로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주 순진한 얼굴로 “정상은 비어있다”라는 제목을 단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정상에 우뚝 서는 자신이나 자식들의 미래를 상상하고 아멘을 연호한다.
이들은 성욕은 부정하지만, 탐욕은 축복이라고 믿는 아주 순진한 신자들이다. 그래서 부유한 이들이 많은 강남의 큰 교회를 찾아 나가는 것이다.
순진한 눈빛을 가진 순진한 신도들은 대물림하는 축복을 좋아한다.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나도 누리고, 자기 자식도 누리고, 손주들도 누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목사들은 대부분 부유하게 살아온 목회 자리를 자식들에게 대물림한다.
재화가 제한된 세상에서 내가 너무 많이 가지거나 독점하면, 다른 사람이 더 적게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자식 교육이란, 사람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을 시키는 것이다.
이들은 순진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앞서야 한다고 믿는다. 교회에서 남의 자식들이 잘 된 소식을 들으면 속이 달아오르고 내 아이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는 순진한 신자다. 그래서 강남 좋은 학군에 찾아가 사는 것이다.
오늘도 순진한 신자는 새벽기도에 나가서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기도했을 것이다.
순진한 강남 기독교인들은 거짓말을 미워한다. 순진한 신자는 품위 없이 욕설을 하는 이를 경멸한다. 가난한 사람도 냄새가 나서 싫어한다. 그들 역시 가난에서 도망쳐 나와 부유함을 사모하는 삶을 살아왔으므로, 가난은 경쟁에서 뒤진 무능의 증거고, 불성실의 대가라고 여기며 경멸한다.
순진한 신도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자신의 죄를 씻어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 죽었다고 생각한다. 경쟁에서 이기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아지는 삶이 기독교인의 삶이라고 순진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영성일기를 쓰면서, 깨끗하고 고결한 삶을 살아간다고 믿고,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찬양을 부르며 가끔 감동하며 눈물도 흘리는 순진한 신자는, 자신과 같지 않은 이들을 경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준이 높은 급이 모이는 큰 교회에 나가는 것이다.
순진한 강남 교인들은 좌파를 미워한다. 자신들이 가진 것을 자꾸 빼앗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올리려드는 좌파의 복지정책은 무능하고 불성실해 가난한 이들을 무위도식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좌파, 사회주의자, 심지어 공산주의자는 자신도 하나님도 싫어하는 존재,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라고 여겨 악마화 한다.
순진한 강남 기독교인들은 사랑을 적선이라고 생각한다. 민주사회에서 부의 편중을 줄여 가난한 이들도 조금은 인간답게 살아가게 하자는 복지정책을 반대하는 이유다. 좌파 정권을 착취적 정권이라고 순진하게 여긴다.
순진한 얼굴에 웃음을 띠고 나눔과 사랑을 위한 바자회를 하면서 이들이 내 놓는 것은 자기가 쓰다 버릴 것뿐이다. 이렇게 순진한 강남 신자들이 이해하는 사랑은 적선이다.
순진한 기독교 신자는 순결한 결혼 생활에서의 자기 욕망은 아름답게 가꾸지만, 타인의 성애는 추하고 더러운 것이라고 여긴다. 그 중에서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는 것이 동성애다.
순진한 신도들에게 목사가 성경 구절을 증거로 들이대며 “동성애는 동성애자가 선택한 죄악”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성경구절은 과학적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순진한 신도들은 전혀 이해할 능력도 없다. 과학적 증거가 “동성애는 주어진 것”이라고 대부분의 선진국을 다 설득했지만, 순진한 신도들은 이런 사실을 확인하려 들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동성애자들을 향해 혐오와 증오를 품는 것으로 자신의 성생활의 건전함을 자랑하려 든다. 순진한 신도들은 간통은 용서할 수 있지만 동성애는 용서가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가정을 가지고, 자식을 낳고 그렇게 살아야 정상이라고 순진하게 믿는다. 이성애만이 자연의 법,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순진하게 믿는 것이 자기들 세계 안에서는 편하기 때문이다. 이견을 주장했다가는 즉시 추방되고 지목을 받을 것이니 순진한 신자는 이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절대 반대한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서 순진한 신자들이 나열하는 이유를 보면 너무나 순진한 것이다.
차별금지법은 “동성애자를 순진한 신자가 차별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라는 논리다. 순진한 신자는 동성애자를 차별할 타고난 권리를 가진 것처럼 순수하게 믿는다.
이들은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면 동성애자 천국이 된다.“고 공포를 조장하는 목사의 허위 주장을 ”아멘, 아멘“하며 순진하게 받아 전한다.
강남 목사들이 ”차별금지법을 통과 시킬 세력을 지지하면 절대 안 됩니다.“라고 강단에서 외치면, 순진한 기독교인은 금방 알아차린다.
순진한 신자들은 ”민주당 후보 뽑으면 절대 안 된다, 동성애자 천국이 되면 안 된다“고 순진하게 다짐하는 것이다.
강남의 순진한 기독교인들은 이미 차별금지법을 만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대만이 동성애자 천국이라고 순진하게 믿는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성애 반대를 외치던 큰 교회 목사의 자식들이 약속이나 한 듯 동성애자 천국으로 유학을 가고, 고관대작 자식들도 살펴보면 동성애자 천국으로 유학 간다는 사실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목사의 학력 난에도, 돈 많고 지위 높은 이들도 다같이 동성애자 천국에서 공부를 한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많은지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들도 동성애자 천국으로 아무런 두려움없이 자식을 유학 보낼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정말 순진한 기독교 신자들이다.
이런 순진한 강남 신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30만 표 이상을 윤석열에게 몰아주면서 24만 여표 차로 강남 기독교인이 뽑은 검찰주의자 대통령을 온 국민에게 선물해 주었다. 대단한 일이다.
강남 목사들은 마치 신천지 교인처럼, 건진 법사처럼, 천공도사와 나란히 윤석열의 죄와 악을 감춰주며 감싸주었다. 다른 편만 이리 저리 흠을 잡고 찔러대곤 했다.
강남의 순진한 신도들과 신천지 교인들은 마치 혈맹이라도 된 듯 마음이 하나 되어 일사분란하게 윤석열을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표를 던졌을 것이다.
좌파 공포, 동성애자 천국, 세금 폭탄 막자는 심리를 품고 투표했을 것이다. 강남의 순진한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아프리카 신학자 알렌 보잭이 쓴 책, "Farewell to Innocence"라는 책이 있다. “순진함이여 안녕”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역사를 황폐하게 만드는 자들이 순진한 경우는 없었다. 흑인을 차별하는 사악한 자들은 바로 순진한 자들이 순진하게 선택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황폐하게 만드는 이들은 바로 순진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진함을 향해 안녕을 고해야 한다“라는 요지를 남긴 책이다.
순진한 강남 신자들은 순진해서 이명박을 뽑고, 순진해서 박근혜를 뽑고, 순진해서 태영호를 자신들의 대표로 뽑더니, 이번에는 순진해서 윤석열을 뽑았다.
이런 것을 예견했는지 제임스 발드윈은 일찍이 이런 말을 남겼다. ”사악한 범죄를 조장하는 것은 순진함이다.“ (It is the innocence which constitutes crime. - James Badwin)
나는 순진한 기독교인을 천박하게 여긴다. 그들은 대한민국 역사에 무수히 누를 끼치면서도 자신들의 순진함이 이웃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인 줄 모른다.
그들은 오늘도 순진한 얼굴로 로 책상에 앉아서 지극이 사소한 개인적인 죄를 찾아내며 영성일기를 쓰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역사에 어떤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오늘도 영성일기나 쓰고 있을 것이다.
이들은 영성일기를 쓰기에 자기 행위의 오류나 수치를 모른다. 영성일기 쓰는 것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들이 자신들의 어리석은 순진함을 향하여 안녕이라 고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ㅡ 박충구 (감신대 은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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