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섬망

ree610 2021. 4. 26. 14:54

섬망*

              전영관

병실에서 법고가 운다
북채의 타격음이 아니라 채로 길게 문지르는 소리
평생 독경으로 무두질했을 견고한 소리
간병인이 물수건으로 몸을 닦을 때
아프다고 터져나오는 소리
절에서 왔다는 혜운 스님이 운다
병들지 않았다면 음성도 우렁우렁할 스님
차가움과 뜨거움을 통증으로 착각하는 내 왼손처럼
물수건 닿는 자리마다 낯선 감각일 테지
거죽을 벗기는 듯 쓰라리고 화끈거리겠지
울음소리가 새벽의 바닥을 기어간다
통증은 언어 바깥의 것이다 알아듣지 못할 대화를 간병인과 나눈다 통증에 막다른 골목으로 몰렸나 싶으면
엄마......
엄마......
불경 필사를 했어도 절반은 마쳤을 노승께서
아미타불 대신에 엄마,엄마를 부른다
부처는 넓고 크고 엄마는 깊고 질기다고 되뇌며
젖은 베개를 베고 돌아눕는다
아득한 소리를 따라 부른다

*뇌경색 환자에게 나타나는 환각.

ㅡ 전영관 「슬픔도 태도가 된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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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관(1961~)시인은 2011년에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2015년 뇌경색에 의한 후유증으로
좌측 반신마비가 약간 있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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