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허물 이스라엘의 죄 (미 1:2-7)
2.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3.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4.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5.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6.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7.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2절)이라며 심판을 선포합니다. <...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4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5절)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미가>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여호와와 같은 자가 누구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같은 분은 다시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대성과 유일성을 강조하는 <미가> 선지자의 이름은 다분히 상징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와 이스라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탐닉하며 영적 행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7절)고 하셨습니다. 미가 시대는 이렇게 우상숭배를 드러내놓고 행하는 종교적 음행과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객 같은 약자들을 박대하고 착취하고 폭압하는 사회적 죄악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 변방 모레셋 출신의 미가 선지자가 누구보다 더 진지하고 더 절실하게 분노하고 고발하고 예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B.C. 721년 결국 앗수르 왕 살만에셀과 사르곤이 쳐들어와 사마리아가 폐허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열 지파가 온 세계로 흩어지고 사마리아는 아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생의 값>(7절)이란 바알 신전의 창녀들이 행음하여 번 돈을 뜻하는 것으로 우상과 목상을 깨뜨리므로 그 모든 것을 다 허무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악을 응징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높이 찬양합시다.
-본문이 지적하는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꼽아 보십시오.
-하나님이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어떻게 응징하시고 심판하겠다고 하십니까?
-7절이 말씀하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주님, 미가 시대 남북 왕조의 중심이었던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는 음행의 값, 기생의 값으로 세운 산당과 목상 같은 우상들이 즐비했고, 백성들은 거기서 우상을 숭배하며 저마다 깊은 영적 간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미가 선지자를 통해 <산들이 높고 골짜기가 갈라지고 비탈이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라며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셨습니다.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이 다 불살라> 질 것이라며 예고하셨습니다. 저희들 과거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상을 기억하며 더욱 바르게 더욱 신실하게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한 결 같이 하나님에게 붙어있기를 원하신다.
어떤 이유와 구실과 동기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불신앙적인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랐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바램은 환경으로부터 하나님을 향한 바램이 아니라
자신 속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바램이었고,
환경이 그들을 하나님을 바라며 살도록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고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며 산다고 하는 것은
삶이 기쁨이나 슬픔이나 즐거움이나 고통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자신 속에,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과 모여 살아가는 이 세상에 이루어지고,
세상의 주권도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그런 세상을 갈망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사 간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입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본 받으며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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