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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노을로만 된 가슴으로 갈 수 있을지 - 황학주 - 잘 벌어진 노을 틈에 서서 젖고 있었지요 들소들의 영혼이 투욱투욱 흙 파는 소리가

ree610 2024. 11. 14. 08:52

우리가 노을로만 된 가슴으로 갈 수
있을지

- 황학주 -

잘 벌어진 노을 틈에 서서 젖고 있었지요
들소들의 영혼이 투욱투욱 흙 파는 소리가 들리면
적막 구덩이에 옥수수 알갱이가 몇 알 떨어지구요
말 못하게 깊은 흙
어떻게 경사로로 둘러싸인 인생이 구릉을 넘을 때
내가 온 곳을 모두 통과하여
물처럼 몸을 도는, 상처를 또 누가 보고 있는지
벗은 나무 하나에 기대어 물어 봤습니다
가자,
들을 수 없는 슬픔으로 붉은 구릉을 하나씩 지어놓고
그 위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지르는
죽은 나무들은 지난해보다 조금 더 말랐습니다
길이 아니어도 넝쿨을 뻗는 남자가
운동화 끈처럼 풀어진 새들이 앉아 있는
늪지로 벌써 들어가 있었습니다
꿈이 있는 한엔 길을 보았다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났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노을로만 된 가슴으로 가고
잘 엎어진 구릉으로 저 길을 갈 수 있을지
무진 애를 써서 더 휘청거려야 하겠지요
돌 하나를 달고 가는 물방울처럼
붉은 하늘에 힌 달이 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