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노을로만 된 가슴으로 갈 수
있을지
- 황학주 -
잘 벌어진 노을 틈에 서서 젖고 있었지요
들소들의 영혼이 투욱투욱 흙 파는 소리가 들리면
적막 구덩이에 옥수수 알갱이가 몇 알 떨어지구요
말 못하게 깊은 흙
어떻게 경사로로 둘러싸인 인생이 구릉을 넘을 때
내가 온 곳을 모두 통과하여
물처럼 몸을 도는, 상처를 또 누가 보고 있는지
벗은 나무 하나에 기대어 물어 봤습니다
가자,
들을 수 없는 슬픔으로 붉은 구릉을 하나씩 지어놓고
그 위에 바람 지나가는 소리를 지르는
죽은 나무들은 지난해보다 조금 더 말랐습니다
길이 아니어도 넝쿨을 뻗는 남자가
운동화 끈처럼 풀어진 새들이 앉아 있는
늪지로 벌써 들어가 있었습니다
꿈이 있는 한엔 길을 보았다고
아름다운 나라를 만났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노을로만 된 가슴으로 가고
잘 엎어진 구릉으로 저 길을 갈 수 있을지
무진 애를 써서 더 휘청거려야 하겠지요
돌 하나를 달고 가는 물방울처럼
붉은 하늘에 힌 달이 떠 있습니다
'모리아 > 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가 초막(草幕)의 꿈 -엄상익 변호사- 노년이 되면 서울을 벗어나 조용한 강가에 살고 싶었다.. (6) | 2024.11.18 |
---|---|
프란치스코 교황의 21가지 명언 1. “준비한 원고는 그만 보겠습니다.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겠습니다.” (2) | 2024.11.18 |
세월이 가면 - 박인환 - (0) | 2024.11.06 |
<고국으로 돌아온 홍범도 장군의 묘비를 홍범도 기념사업회에 전달했다> 지난 10월 8일, 카자흐스탄에 다녀오며 기증받은 홍범도 장군의 묘비를 (2) | 2024.10.24 |
흑염소의 만트라 -고진하- 늙으면 누구나 말이 많아진다. 제 몸에서 죽음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일까, 산책이나 좀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0) | 2024.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