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염소의 만트라
고진하
늙으면 누구나 말이 많아진다.
제 몸에서 죽음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일까,
산책이나 좀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무릎 관절에서 똑, 똑, 삭정가지 부러지는 소리.
묵언기도 사흘째,
무슨 성상 따위도 방 안에 없지만
잠잠히 엎드려 있으려 했으나
멍머구리 들끓듯 안의 소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풀밭 위 사람들 발자국이 낸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방죽 밑에 풀어놓은 흑염소들,
한가로이 풀 뜯어먹에에 여념이 없는 놈들 옆에
똥 누는 폼으로 쭈그린 나도
민들레, 질경이, 토끼풀 몇 잎식 뜯어 꼭꼭 씹어본다.
한에, 왜 이렇게 쓴 거야…… 퉤, 퉤!
남 무심코 며칠 공들인 묵언을 깨버리고 만다.
그 순간, 늙은 흑염소가 우스꽝스럽게 구부러진 뿔을 흔들며
들이받을 듯 가까이 다가오다가
지가 무슨 구루라도 되는 양 만트라 하나 획 던져준다;
음, 메에에에…… 음, 메에에에에……
그 떨리는 소리의 여운은 산책길에 또 만난,
무뚝뚝한 기차의 기적소리로 시원스레 이어진다.
침묵의 연인이고 싶어 스스로 재갈 물린 묵언 사흘
그래, 이쯤에서 작파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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