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원 목사님-선교통일한국협의회, 통일선교공로상 수상식]
예수전도단의 설립자이시면서 통일비전캠프의 설립자이신 오대원 (David E. Ross)목사님께서 지난 8/29일에 선교통일한국협의회에서 제정한 통일선교공로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참고로 작년 수상자는 분당 할렐루야교회 김상복 목사님) 모두 수고 많으셨고 특히 수고하신 [선교통일한국협의회]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부흥한국팀도 찬양으로 함께 예배하면서, 사랑하고 존경하는 목사님과 사모님과,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시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영광스럽고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수상식 중, [내가 만난 오대원 목사님] 시간에 부족한 저도 목사님을 통해 받았던 가르침과 감동을 나누었습니다. 이 곳에 두 번 다시 없을 제 평생 가장 긴 페북 글을 나눕니다! 두 분을 향한 저의 줄일 수 없는 존경과 사랑의 마음으로!!!
[뉴 코리아와 열방을 위한 선교사, 오대원 목사님과 엘렌 사모님]
사람이 태어나서 정말 마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닮아가고 싶은 분을 인생 가운데 만난다는 것은 너무도 큰 축복입니다. 저는 오대원 목사님과 사모님을 오랜 시간 뵈면서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두 분이 바로 그런분들이시고 그것이 얼마나 큰 축복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두 분을 제 인생길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만남의 축복입니다. 두 분은 하늘 나라의 생명의 말씀을 부단히 이 땅 위의 수 많은 영혼들에게 전해주실 뿐만 아니라 삶으로 주님을 따라가며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과 함께 평생 살아오셨습니다. 저는 제가 예수전도단에서 두 분을 처음 뵙게 된 지난 사십여년 전부터 지금까지 두 분을 뵈며 늘 마음에 감동을 받고 귀한 영감을 받아왔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참으로 셀 수 없는 수 많은 사람들이 두 분의 삶과 사역을 통해 자신의 길들을 발견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신했으며 이 땅에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지금도 살아가고 있음을 저는 잘 압니다. 두 분은 그렇게 주님을 따르시는 평생의 삶으로 하늘 나라의 복음을 증거하셨으며, 모든 영혼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끄는 복음을 살아내심으로 참으로 셀 수 없는 수 많은 영혼들에게 심대한 영향력과 깊은 영감을 주셨습니다.
두 분은 특별히 갈라진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을 위하여, 그리고 오래된 막힌 벽을 허물고 우리 시대에 새롭게 하나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선택하신 귀한 분들이십니다. 두 분을 통해서 저는 우리 시대 한반도를 위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욱 깊게 넓게 이해하고 헌신하게 되었으며 다양한 영역에서 부르심의 삶을 살아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번에 오대원 목사님께서 선교통일한국협의회의 통일선교공로상을 수상하시게 되어 너무도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저의 글을 통해 오랜 세월 목사님과 사모님을 곁에서 뵈올 수 있었고 또 모시고 사역도 하면서 배우고 깨닫게 된 것들을 나누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합니다. 또한 두 분께는 깊은 존경과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원합니다. 부족한 저의 글이지만 두 분의 삶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나누기 원합니다.
1961년에 한민족을 향한 부르심 안에서 한국에 선교사로 오신 오대원 목사님과 사모님은 하늘 나라와 하늘 아버지의 뜻을 한반도에 가져오기 위하여 말씀과 예배와 삶의 모든 영역을 통해 평생 겸손하게 섬기셨습니다. 이미 선교사로 헌신하시고 어느 나라를 갈 것인가 미국에서 간구하시던 1960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4.19혁명의 뉴스영상을 보시면서 한국으로 선교지를 결정하셨다고 하셨습니다. 혁명에 앞장서고 있는 불의에 맞서는 열정적인 한국의 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을 뉴스영상을 통해 보시면서 그들을 복음 안에서 제자화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세계선교를 이루는 꿈을 꾸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은 두 분의 삶을 통해 진정으로 한민족 안에서 현실화가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 꿈과 부르심의 순종을 통해서 한국에서 수 많은 선교사와 목회자, 다양한 사역자들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70년대 초 설립하신 예수전도단의 각종 성경공부와 화요기도모임, 전도집회등을 통해 한국민족을 제자화하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셨습니다. 현재까지도 여전히 섬기시고 있는 다양한 두 분의 사역을 통해 아직도 수 많은 사람들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저와 저희 가정도 그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는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 묵상, 예배, 하나님의 나라, 세계선교에 관해서도 배웠지만, 특별히 북한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 뉴 코리아 New Korea를 향한 진정한 성경적 삶, 바로 New Korean의 삶에 대해서 아직도 배워가고 있으며 그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대원 목사님께서는 특별히 남과 북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섬기며 열방을 섬기는 뉴 코리아의 비전 안에서 뉴코리아를 위한 세미나와 섬김학교 (New Korea Servant School) 등을 통해 한국과 해외교포 사회, 그리고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나라들 안에서 다양한 역할들로 섬겨오셨습니다. 종의 마음으로 섬길 수 많은 제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저희 부흥한국 팀은 때로는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미주지역의 세미나나 리트릿도 함께하면서 섬길 수 있는 특권도 은혜로 주셔서, 저희는 목사님의 메시지와 네트워크 사역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함께 섬길 수 있었습니다. 저와 저희 부흥한국은 오대원 목사님의 메시지와 사역을 통해서, 또 팀의 영적 멘토로 모시고 배우면서 현재까지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저는 이어지는 글들을 통해서 목사님을 모시고 시작했던 부흥한국의 [부흥콘서트]와 [통일비전캠프] 사역을 나누며, 오대원 목사님께서 복음 안에서 새로워지는 한민족을 위해 그동안 주도적으로 해오셨던 일들을 또한 나누고자 합니다.
[오대원 목사님과 부흥콘서트]
저는 90년대 초반부터 민족의 회복과 부흥을 기도하며 곡들을 작곡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1996년 가을에 [부흥]이라는 곡을 주셨습니다. 그 곡은 원래 한국의 학원복음화협의회에서 대학생들의 부흥을 위한 곡으로 의뢰받아 그 해에 시작한 [리바이벌대회]의 주제가로 작사작곡하던 곡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때였는데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에 굶어서 또 전염병에 걸려서 돌아가신 분들의 주검이 두만강변에 쌓여있는 참담한 상황이 그 때 처음 한국의 TV 뉴스에 영상으로 보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뉴스를 보며 북한영혼들을 향한 주님의 마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쪽 만이 아닌 북쪽까지를 포함한 우리 민족 전체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부흥]이라는 곡을 작곡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1997년에는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제가 작곡한 16곡의 노래가 예수전도단에서 음반이 되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음반이 나오고 집회를 하면서 이 일들에 주님께서 강력하게 기름부으시고 인도하심을 예수전도단과 저희 음악사역자들이 동일하게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후 [부흥콘서트]라는 이름으로 북한동포들을 향한 사랑과 비전을 나누는 찬양과 기도의 집회들을 국내와 해외 도시들에서 연합해서 약 10년간 이어갔으며 많은 북한을 위한 모금도 하였는데 그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늘 오대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사실 저희 부흥한국의 [부흥콘서트] 사역은 처음부터 오대원 목사님을 중심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1998년 5월에 약 3주 가까이 전국을 투어하며 우리 민족의 회복과 북한동포들의 구원을 위한 [부흥콘서트]라는 찬양과 기도집회를 준비할 때, 저는 주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 일은 1997년 연말에 그 다음 해에 있을 그 [부흥콘서트]를 기획하며 기도하던 중에 일어났습니다. 제 마음에는 전국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여덟 번의 집회를 할 때, 북한동포들을 돕기 위한 모금만이 아니라 북한동포들의 구원과 그것을 위한 헌신의 메시지가 있어야 함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예수전도단의 대표셨던 홍성건 목사님은 민족의 부흥에 관한 주제로 네 번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셨기에 또 다른 네 번의 북한에 관련된 메시지를 실제적으로 전할 분을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오대원 목사님께서 그 메시지를 하셔야한다는 강한 확신을 제게 계속 주셨습니다. 그것은 부족한 저도 느낄 수 있는 강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 당시의 저로서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오대원 목사님께서 하셔야한다는 저의 그 확신이 저의 이성으로는 그 당시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는 목사님께서 북한까지도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것을 그 당시의 저는 잘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두번째는 더군다나 북한선교에 대한 메시지라면 같은 동족인 한국사람이 당연히 해야한다고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하던 어느 날, 밴쿠버에 계신 예수전도단 선배 정요한 선교사님께 그 고민을 나누었는데 그 분께서는 제게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면서, 제게 오대원 목사님께서 70년대에 한반도 전체에 대해서 보신 환상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지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달 밴쿠버에 올라오시는 오대원 목사님과 함께하는 찬양모임의 찬양인도도 하면서 다양하게 목사님을 뵙고 있었지만 저는 전혀 알지를 못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선교사님도 그 뉴 코리아에 대한 환상 이야기를 목사님으로부터 들으시고는 20대에 부산에서 큰 기업의 회장을 하시던 것을 다 버려두고 북한동포들을 섬기기 위해서 헌신하신 분이셨습니다. 그 날 정선교사님께서는 제게 시애틀에 가서 목사님께 [부흥콘서트]에 강사로 오시는 것을 의논드리고 그 뉴 코리아와 부흥에 관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도 듣고 오라고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998년 1월에 밴쿠버에서 차로 시애틀에 내려가 오대원 목사님을 찾아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부흥콘서트]에서 메시지를 전하시겠다고 흔쾌히 허락하셨고 뉴 코리아의 비전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오대원 목사님은 그 1998년 이후로 지속적으로 저희 부흥콘서트에서 북한에 관한 메시지들을 나누시며 한민족을 깨우시는 일을 섬겨오셨습니다. 사실 그 당시는 온 열방을 섬기는 한국 예수전도단 안에서 조차도 여러 환경상 북한을 향한 사역이 전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1998년 투어집회 때마다 말씀을 전하실 때마다 한국의 도시들 가운데에서 북한을 위해 중보하며, 북한에 문이 열리면 수년간 들어가 섬길 사람들을 도전하셨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일에 반응하고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때 그 집회들에서 헌신하셨다는 민족을 위한 사역자들을 저는 그 이후로 많은 곳에서 만나왔습니다.
저는 국내에서의 집회투어이든지 해외 교민들의 집회투어이든지 목사님을 모시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메시지와 도전을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에게 북한과 온 세계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부어주시는 것들을 보았습니다. 1998년 한국 7개 도시, 1999년 미국 4개 도시, 2000년 LA, 2001년 미국 5개 도시, 2001년 NK연구학교 세미나, 2002년 호주와 뉴질랜드, 2006년 미국과 캐나다 7개 도시, 2008년 미국 동부 3개 도시, 2008년 뉴질랜드 2개 도시, 그 이후로도 국내와 해외에서 여러 곳에서 목사님을 모시고 부흥콘서트와 세미나와 성경공부 모임들을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북녘 동포들을 복음과 사랑으로 섬길 사람들을 목사님을 통해서 일으키시고 헌신시키시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대원 목사님을 사용하셔서 수 많은 북한선교 통일선교 사역자들을 일으키셨습니다. 또한 그 옆에서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고 보며 함께 여행했던 그 모든 기억들은 저의 인생의 가장 빛나고 감사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오대원 목사님과 통일비전캠프]
그렇게 목사님을 자주 뵙던 2007년에 저는 목사님께 어떤 의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국제 YWAM과 연결되기 전에 한국 예수전도단 안에는 특별한 종류의 캠프가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있었습니다. [전도학교]라는 이름의 이 캠프는 아무리 짧아도 일주일에서 10일, 혹은 2주 정도였으며 전도여행까지 할 때는 3주를 하기도 하는 캠프였습니다. 저는 목사님께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이전의 [전도학교]와 같은 캠프를 목사님께서 매년 한국에 오셔서 열어주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그 때도 목사님께서는 기뻐하시며 흔쾌히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2008년 2월에 [통일비전캠프]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그렇게 목사님께 캠프를 열어달라고 부탁드린 이유가 있었습니다. 부흥한국 사역으로 혹은 개인적인 강의로 수년동안 많은 교회들을 방문하고 다양한 캠프에서 섬기면서 계속 답답함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교회들 안에서 복음을 한낱 자기중심적인 축복 안에서만 이해하고 적용하면서 시대와 민족을 위해 고민하는 모임이나 헌신자들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결단으로 그렇게 시작된 [통일비전캠프]는 주님의 은혜로 현재까지 매년 이어오고 있는데 그것은 캠프의 중심에 오대원 목사님의 메시지와 포용하고 섬기시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오목사님의 결단으로 제 1회 통일비전캠프가 경기도 남양주시에 소재한 감리교교육원에서 [북한선교캠프]라는 이름으로 2008년 2월에 시작이 되었고 그 다음해부터 현재까지는 주로 [통일비전캠프]라는 이름으로 매년 초에 열리고 있습니다. 2008년에 처음 시작할 때, 오목사님께서 그 당시 대표로 계셨던 미국 시애틀 YWAM-AIIM의 간사들과 저희 부흥한국 두 단체가 시작했던 이 캠프는, 2009년부터는 평화한국이, 2010년부터는 한국YWAM 북한선교연대가 (현재는 한국 YWAM), 2013년부터는 CCC가 주관단체로 함께하면서 더 많은 활기를 띠었습니다. 2016년에는 사단법인 뉴코리아가 합세하였으며 그 이후, SFC와 생명평화길벗 등 많은 단체들과 사역자들이 동역하며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연합사역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넘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루며 복음으로 새로워질 한반도를 꿈꿔온 이 사역이 가능했던 것은 모두 전적인 주님의 은혜이지만, 또한 오대원 목사님께서 이 사역의 문을 여시고 현재까지도 그 중심에 계시기 때문인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통일비전캠프를 통해서 저는 우리들이 연합할 때 주시는 많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신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대원 목사님께서 철저히 말씀 안에서 사랑과 용서와 평화, 민족의 온전한 회복과 부흥에 관한 주제말씀들을 나누시며 한반도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매년 나누실 때마다 저는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남과 북의 사람들과 해외교포들과 외국 형제자매들까지 그 말씀 안에서 함께 지어져가는 신비감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경험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새 시대의 하늘과 땅을 여는 통일코리안으로서 지어져 가는 감동으로, 또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경륜을 섬기는 감동으로 영혼이 즐거워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은 자로서의 감사가 넘쳐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님의 메시지를 듣는 시간은 이 시대를 위해 섬기라고 부르신 주님의 마음으로 늘 제 영혼이 더욱 새롭게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들은 정말 우리 시대 원수 맺고 분단되어 여전히 시대의 장벽이 높이 서있는 이 땅 모든 백성들이 들어야할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복음이요, 남과 북의 모든 세대 모든 영혼들을 살려내는 위대한 복음인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계속해서 미워하고 정죄하던 자리에서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의 위대한 사랑과 주 예수님의 한량 없는 은혜로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진정한 능력의 복음을 깨닫게 하는 메시지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북녘 백성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 우리도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우리의 원수들까지도 용서하고 화해해야한다는 그 말씀들이 바로 진정으로 한반도의 계절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복음의 능력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진정으로 평화를 위해 일할 때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임을 배우며 우리가 그런 피스메이커로 살아가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특별히 오대원 목사님의 영적 리더십 안에서 진행되는 이 캠프의 또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아름다운 연합이었습니다. 남과 북의 사람들과 해외 동포들과 외국인 형제 자매들, 다양한 세대와 단체가 오직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나고 교제하며 협력하며 섬기면서 우리는 통일코리아의 미래를 먼저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전쟁의 위기도 있고 긴장과 분단과 높은 벽이 있지만, 여전히 아픈 한반도의 새 시대를 꿈꾸며 소망하는 사람들이 미래를 먼저 살아내며 함께 격려하며 벽을 허물고 시대의 길을 만드는 연합의 장이었습니다. 서로 주장하지 않고 각자의 역할과 목소리를 내며 한 목소리로 한반도를 향한 아름다운 동역을 이어온 이 캠프의 중심에 오대원 목사님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살아온 삶과 메시지를 들으며, 존경하는 어른이요 뛰어난 성경교사인데 자신을 드러내며 군림하려는 분이 아니시고 오히려 포용과 겸손 가운데 격려하시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모두가 영감을 받는 말씀을 나누시며 섬기셨기에 통일비전캠프가 현재까지도 아름다운 연합의 장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한국 안에서만 아니라 해외동포 사역자들, 세계의 다양한 단체나 사역자들과 목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네트워크는 이 캠프에서 더욱 많은 미래를 복음 안에서 상상하며 꿈꾸게 하였습니다. 많은 현장에서 심지어 이미 북한 안에서 동포들을 섬기고 있는 다양한 분들과 목사님께서 가지고 계신 교제와 연합은 현실을 정확히 이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한반도에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나아가는 소망과 용기를 갖게 주었습니다. 목사님의 영향력 아래에서 캠프는 늘 주님의 마음이 흐르는 곳이며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되었으며, 또한 많은 동역자들이 서로 만나 격려하며 기도하며 힘을 얻는 연합과 교제의 장이 된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글을 맺으며]
오대원 목사님과 엘렌 사모님을 한국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 시대 코리아의 시공간에 대한 깊은 이해들을 나누셨으며, 한반도에 진정한 치유와 화해와 회복과 진정한 창조를 가져오는 말씀을 지속적으로 선포해 오신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하지도 못하고 실행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오해를 받으실 때라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 평화 안에서 진정한 말씀사역을 이어오신 것에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우리 시대에 주님과 함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수 있는지를 삶으로 보여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과 지속적으로 교제하시면서 세상을 위한, 특별히 코리아의 통일시대를 위한 믿음과 소망의 말씀들을 선포해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시대 코리아의 통일시대를 꿈꾸게 하는 말씀들을 늘 나누시면서도 우리가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늘 하나님 나라와 세계선교의 큰 그림에서의 의미와 비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모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지기 위하여 우리가 어떠한 용기와 헌신으로 살아가야하는지 저희 모두에게 모범이 되어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두 분을 생각하면 늘 제일 먼저 제게 떠오르는 모습은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시는 모습입니다. 위대하신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누리고 그 사랑을 세상에 강같이 흘려보내시기 위하여 평생 섬겨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 부흥, 고형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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