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시

기다리는 사람 -오은-     골목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골목에도 있고 큰길에도 있고 마트에도 있고 시장에도 있다..

ree610 2024. 8. 22. 07:59

 

[기다리는 사람]

-오은-
 
  골목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골목에도 있고 큰길에도 있고 마트에도 있고 시장에도 있다. 학교 정문에도 있다. 아들이 엄마를 삼십 분째 기다린다. 남자가 남자를 삼십 일째 기다린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삼십 년째 기다린다. 몸이 몸을 기다린다. 마음이 마음을 기다린다. 언제나 기다린다. 어디서나 기다린다. 도처에 기다림이 있다.  
 
  이번 달 생활비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희망을 기다리는 사람, 성공을 기다리는 사람, 경쟁자가 실패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어제의 영광을 다시 기다리는 사람, 내일의 행복을 처음 기다리는 사람도 있다. 기다림을 반복하는 사람과 기다림을 번복하는 사람이 있다. 골목을 서성이다 휴대 전화를 여는 손이 있다. 간절한 순간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 앞을 뛰어가는 사람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고 전속력으로 뛰어간다. 기다린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고 이기적으로 뛰어간다. 
기다림은 충돌하는 법이 없다. 하나의 열정이 하나의 기다림을 스쳐 지나간다.
헐떡이는 사람 뒤로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다. 뛰고 있는 두 개의 심장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기다림이 그림자처럼 길어지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언제 올지 섣불리 예측하지 않는다. 온다고 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리겠다고 겨우 말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뒷모습이었다. 기다림이 맺힌 순간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뒷모습은 멀어져 갔다. 힘겹게 다가가도 뒷모습은 작아지고 있었다. 기다림이 끝날 때까지 기다림은 해소되는 법이 없다.
  앞모습으로 뒤를 좇는 사람이 있고 뒷모습으로 앞을 향하는 사람이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삼십 분이 삼십 일이 되고
  삼십 일이 삼십 년이 되고 
 
  만날 때는 안녕하고 싶어서 안녕
  헤어질 때는 안녕하지 못해서 안녕 
 
  기다리는 사람이 골목에 있었다.
  기다릴 때까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