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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논평13 (2023.11.29.)
<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윤정권은 탄핵해야 >
김상기 목사
윤석열의 20대 대통령 취임후 1년반의 시간이 흐르며 대선과정에서 제기된 검찰독재는 완성의 마지막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의 권력기관들은 물론 사법부와 군부, 경찰과 언론까지 장악한 윤정권은 검찰출신들의 국회진출과 장악을 위해 영남지역 국힘당 국회의원들이나 소위 윤핵관들에게 불출마 내지 험지출마를 강요함으로써 검찰독재의 마지막 퍼즐을 꿰맞추려 하고 있다.
이를 막으려면, 기대하기 힘든 것이지만, 국힘당이 끝까지 버텨 검사출신들의 국회진출을 봉쇄 내지 최소화하거나 선거에서 야당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이 가능한 길들일 것이다. 후자 역시 현재 상태의 야당에게는 마찬가지로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의 윤석열 지지율은 검찰독재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보아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잦은 윤석열의 해외 여행은 그토록 낮은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시도이다.
윤정권은 철저하게 힘에만 의존하고 정치를 거부하는 정권이다. 범죄자와 아닌자만 구분하고 강제력을 행사하려는 검찰정권에서는 협상을 통해 절충과 합의에 이르는 민주적 과정과 절차는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 힘 때문에 특히 한반도의 평화와 민중의 삶이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다.
ㅡ 전쟁의 위험을 불러오는 검찰독재 정권
윤석열은 중국 견제와 억제를 목표로 '힘'에 바탕을 둔 동맹복원과 가치경쟁을 꾀하는 미국의 이른바 '민주주의 가치외교"를 추종하며 "가치동맹"을 기치로 내세우고, 미국 중심의 신냉전적 질서 수립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사실상의 한미일동맹 선언(2023.8.18)이 이루어졌다. 윤석열은 이러한 힘들에 기대어 한반도에서 힘에 의한 평화를 주장한다.
대선 때부터 윤석열은 '조짐이 보일 때'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북한 핵미사일을 막는 방법은 오직 선제공격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종전 선언 같은 상대의 선의에 의존하는 평화는 ′가짜 평화′라는데 이른다(23 1.11 국방부 업무보고).
그렇기에 강한 국방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상대방의 선의에 기대는 가짜 평화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 안보를 지키는 진정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23.3.3 해사 졸업식)고 하며, 현재의 상태를 "일시적으로 전쟁을 회피하기만 하는 취약한 평화"로 규정한다.
이에 따라 을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그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무의미하고, 구걸해서 얻은 가짜 평화가 아니라 압도적 힘에 의한 평화"를 대안이라고 제시한다.
이 목표 달성의 한 단계로 윤석열은 2023.1.4 북한 무인기 대응 전략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쟁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른 한편, 만약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이 벌어지면 "사과가 필요한 게 아니라 원점 타격하면 된다”고 연평도 포격전 유가족 등을 초청한 자리에서 말한다.
그러나 압도적 힘은 윤석열에 의해 앞으로 구축될 것이 아니라 남북군사력이 균형에 이른 1975년 이후 남의 막대한 군사비 지출과 군장비 현대화의 결과로 이미 구축되어 있다. 북한은 이미 90년대부터 남한의 군비경쟁 상대가 되지 못하고, 핵 이외에는 자기를 지킬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과거의 정권들이 북과의 대화와 협력을 핵심적인 평화의 길로 간주했던 것은 그것이 한반도에서 전쟁 자체를 방지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화와 협력을 '상대의 선의에 기대는 구걸'로 인식하는 윤석열과 그 정권은 그 길을 버리고 "압도적인 힘만이 적에게 구걸하는 가짜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를 가져다 줄 것"(23.6.15 연평해전 24주년)이라고 허언을 서슴치 않는다.
정권 책임자는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유지할 책임과 의무가 있음에도 현재를 가짜 평화라고 폄훼하며 전쟁불사를 외친다. 윤정권은 현재 한국이 압도적 힘을 갖고 있음에도 전쟁위험을 상시화하여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당성과 아울러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다.
논어는 안연 7에서 정치에 대해 ‘식량을 충분히 하고, 군사력을 충분히 하고, 국민들이 신뢰하게 하는 것, 곧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버려야 하는 것이 있다면, 군사력과 경제의 순서라고 한다. 이것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충분하지 않다. 전쟁의 불안을 강요하는 정권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끝까지 붙들고 있어야 하는 것은 국민들의 신뢰다. 이것이 국가의 존립기반이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윤정권이 압도적 군사력에만 의존하고 긴장과 불안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그 정권이 왜 유지되어야 하는가?
ㅡ 국민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윤정권
힘을 의지하고 숭배하는 힘의 논리는 약자 혐오와 배제를 짝으로 하고 권력을 폭력의 수단으로 상대에게 굴종을 강요한다. 검찰 총수를 지낸 윤석열에게는 압도적인 힘을 수단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상습화되어 있다. 이러한 '버릇'은 남북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국내의 정치상황에서도 그대로 표출된다.
그는 야당을 철저히 무시하고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다. 종북주사파로 보고 있어서일까? 야당 자체가 배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산하기관들에서도 야당 몫 추천인을 제외하거나 야당 몫 추천인을 의결에서 배제하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야당의 주도로 통과된 중요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 근래 통과된 노랑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해서도 국힘당이 윤석열에게 거부하라고 요청한 상태이다. 국민들이 윤석열의 거부권을 거부한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이를 따를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윤석열은 국민이 염원하던 법을 이제서나마 제정하려고 하면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야당의 입법권을 제한한다.
야당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구걸과 굴종을 강요하는 윤석열에게 정치란 없다. 그는 민주주의를 모른다.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가진 자 편에 서서 갈등을 조장하고 증폭시키고 갈등의 피해자인 약자를 법으로 억압한다.
화물연대노조는 3년 시한으로 도입되어 2022년 12월 31일로 끝난 안전운임제(화물기사들의 최저임금제)의 지속을 위해 22년 6월과 11월에 파업을 벌였지만,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과 같은 위협'이라고 협박하며 노조를 적대하였다. 이 기조에 따라 윤정권은 최초의 업무개시 명령이란 것을 꺼내들었고 면허정지, 면허 취소, 주차위반 벌금 위협 등의 일방적인 법해석과 법의 힘으로 파업을 분쇄하였다. 그리고 아무런 대책도 마련하지 않았다. 윤정권의 힘은 오직 사용자만 위한 것으로 노동적대적인 것이었음이 여기에서 분명해졌다.
그 이후 화물기사들은 운임삭감과 노동시간 연장 등의 가혹한 노동조건과 착취 및 안전 위험에 시달리며 비인간적 삶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지난 3년간 안전운임제는 국가경제를 뒷받침했고 이들의 인간적 삶을 보장했다. 그런데 왜 그것이 계속되면 안된다는 것인가? 단 하나다. 사용자들 곧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윤가와 그 정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권력도 국가경제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비롯한 국민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또한 노동적대적인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에 동조파업을 결의했던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매도하며 경찰력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건설 노동자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부정하였다. 노조는 위축되고 그 결과 조합원들은 실직에 내몰렸고 불법하도급과 안전 사고도 늘어났다. 윤석열의 노조탄압은 오래전부터 권력과 검은 유착관계였고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의 온상이었던 건설업의 사회악을 노조에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윤석열의 야만적인 노동적대적 행태는 중대재해법 제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임금 차별, ILO 탈퇴 등을 언급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는 이런 말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특히 뒤의 두 가지는 한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를 떨어뜨림으로써 국가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국가의 위기는 북이나 노조가 아니라 윤석열의 그릇된 인식에 의해 야기될 가능성이 한층 더 크다.
ㅡ 권력 회수에 대한 국민의 책임
모든 것을 힘의 논리로 파악하고 힘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사람을 살리고 경제를 살리는 정치와는 거리가 먼 조폭 세계관에 상응한다. 그것은 국가 경영관이 될 수 없다.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국민에게서 위임받은 권력의 형태도 아니기 때문이다. 권력의 수여자인 국민은 그 권력을 왜곡.부정하는 윤정권에게서 권력을 회수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 이행 없이 한반도의 평화도 민중들의 인간적인 삶도 없다.
성서는 우리에게 군대가 해체된 아름다운 평화의 미래를 꿈꾸게 한다.
“나라마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칼을 빼어드는 일이 없어 다시는 군사를 훈련하지 않을 것이다”(미가서 4,3).
이때 민중은 이러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제 손으로 지은 집에 들어가 살겠고 제 손으로 가꾼 포도를 따 먹을 것이다. 제가 지은 집에 남이 들어와 사는 것을 보지 않겠고 제가 가꾼 과일을 남이 따 먹는 것도 보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헛수고하지 않을 것이다”(이사야 65,21-23).
권력회수 곧 탄핵이 이러한 꿈을 향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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