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영성

복음주의자

ree610 2023. 11. 27. 15:33

복음주의자

독일어 Sondergut은 매우 독특하고 각별한 것, 무결점의, 대단히 좋은 것이라는 어의가 있다. 복음주의자, 복음주의는 Sondergut이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본다.

내가 교회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순진하고 착해 보였다.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하며 어려운 이를 돕고, 헌신과 봉사에 남다른 이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다. 이런 문화의 자식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나는 이들이 숨기고 있는 집단 공격성을 느낀다.  이상한 도덕적 우월감과 거기서 파생된 영적 증오다. 이들이 품고 있는 영적 증오는 그들의 가슴에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다.  나는 일부 기독교가 바로 이 영성 증오를 생산하고 이용해 왔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에선 이 영성적 증오가뿌리깊은 이민족 혹은 유대인 증오로, 이교도 증오로, 양대 세계대전 후에는 공산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이념적 증오로, 그리고 유색인종 사회에서는 백인우월주의로, 현대 세계에서는 동성애 증오로 나타난다.  이런 영성적 증오야말로 순진하고 착한 기독교인들에게 내장된 공격성의 원인이다.

내가 교회에서 만난 분들은 모두 순진하고 착해 보였다. 스스로 죄인이라 고백하며 어려운 이를 돕고, 헌신과 봉사에 남다른 이들은 대부분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다. 이런 문화의 자식들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자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간혹 나는 이들이 숨기고 있는 집단 공격성을 느낀다.  이상한 도덕적 우월감과 거기서 파생된 영적 증오다. 이들이 품고 있는 영적 증오는 그들의 가슴에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다.  나는 일부 기독교가 바로 이 영성 증오를 생산하고 이용해 왔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세계에선 이 영성적 증오가 뿌리깊은 이민족 혹은 유대인 증오로, 이교도 증오로, 양대 세계대전 후에는 공산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이념적 증오로, 그리고 유색인종 사회에서는 백인우월주의로, 현대 세계에서는 동성애 증오로 나타난다.  이런 영성적 증오야말로 순진하고 착한 기독교인들에게 내장된 공격성의 원인이다.

내가 만난 무수한 기독교인사유와 판단 속에는 한나 아헨트가 아이히만 재판정에서 탄식했던 바, 그 진부하고 평범한 악,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무지의 악, 악에게 저항할 줄 모르는 무능과 침묵의 죄가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감추어져 있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마치 나치 장교들이 성탄절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모짜르트 음악을 들으며, 음악과 교양과 기독교에 관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캐롤을 들으며 즐겁게 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과 다를 바가 없는 교회 생활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사람을 학대하고, 차별하며, 죽이는 일은 그들의 신앙과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기독교 신앙공동체 안에는 무서운 악이, 평범한 것으로 여겨지던 악이 감추어져 있다. 내가 만난 복음주의자들은 이 악과 싸울 생각이 없었다. 이런 문제를 건드리는 것을 스스로 두려워하고 회피했다.

그리고 이들은 아주 순진한 얼굴로 한나 아렌트의 evil of banality에 대해 토론하며 나치를 비웃는다. 자기 안에 나치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식하지 못 한다. 마치 나치처럼 그들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용납 하지 못 한다. 과연 이들이 아렌트를 이해 했을까.

순진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집단 공격성을 드러내는 무서운 기독교인들은, 마치 아이히만과 같이, 왜 그대는 살인적 증오를 가지고 사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마치 아이히만이 “나는 군인이고 좋은 군인이 되기 위하여 상부 명령대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던 것처럼 “나는 기독교인이고, 좋은 기독교인이 되기 위하여 성경에 따라 산다”라며 무죄를 주장한다.

비판적 사고가 결여된 삶은, 아이히만에게서도, 기독교인에게서도 동일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아이히만은 역사의 법정에 세워졌지만, 기독교인들은 역사의 법정에 세워지지 않을 뿐이다. 성경에는 무서운 증오를 가르치는 구절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착한 복음주의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착한 신자들에게 평범성의 악을 가르치면서 그 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무리다.

ㅡ  박충구 은퇴교수(감신대 기독교윤리학)

'모리아 >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낮은 곳으로 임하는 성탄절  (4) 2023.12.15
예배에 있어서 찬양은?  (0) 2023.11.29
복음 곧 주 예수께 매인 사람  (1) 2023.10.05
풀쐐기의 설교  (0) 2023.09.29
용기의 둑을 계속 쌓아야 한다  (0) 2023.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