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에 바로서기 (행 5:42)
찬송 : 80장
오늘날 교회는 공신력을 잃었다.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며 이끌고 가야하는데 거꾸로 사회가 교회를 걱정하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교회의 본질, 신앙의 본질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용규 선교사가 쓴 '떠남', 카일 아이들먼이 쓴 '팬인가 제자인가', 김범석 목사가 쓴 '역전'과 같은 책의 그 밑바탕에 깔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국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것이다. 본질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아론의 아들은 제사장이다. 제사장은 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죽고 말았다. 제사장은 매일 저녁 성소 안에 등불을 켤 때 번제단의 불을 사용하여 향을 살라 드려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임의의 불을 사용했다. 불을 꺼뜨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본질이지 불이 본질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다.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예수님은 구원자시라는 것이다. 예수님보다 먼저 와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은 이렇게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 이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3년의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외치신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3년 내내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시고 전파하신 것은 천국이었다. 천국이 무엇인가? 구원의 실체이다.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예수님으로부터 온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복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 앞에 서야 한다. 복음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직분이나 프로그램이 본질이 아니다. 봉사나 구제가 본질이 아니다. 본질은 복음이다. 본질은 예수님은 구세주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 앞에 서야 한다. 그것이 본질 앞에 서는 것이다. 그렇게 복음 앞에 선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복음의 냄새가 난다. 복음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복음의 색깔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것이 전도이다. 그것이 본보기이기에 교육이다. 날마다 가르침과 전도를 그치지 않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본질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기도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다시 본질로 돌아가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인, 그래서 성도와 가정과 교회와 나라가 바로 세워지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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