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이 지거나 지지 않거나]
-이승희-
꽃이 지는 천변을 걸으며
어찌도 이리 다정하게
내 몸에 잠겨드는지
나는 애초 그것이 내 것인 줄 알았네
지는 것들을 보며
끈적이는 핏물이 꼬득꼬득 말라비틀어지도록
이처럼 황홀했던 저녁
내겐 없었다고 말해주었네
불 켜진 집들 사이에서
불 꺼진 집이 오랜 궁리에 빠져드는 동안
나는 그만
따라가고 싶었지
지는 것들의 뒤꿈치에 저리 아름다운 한가로움
내 것이 아닌 것들로 행복해지는 저녁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고
가로등 불빛이 말해주지 않아도
내게 구역질하지 않는 것들로 만으로도 얼마나 선한가
선한 것들에게는 뭐든 주고 싶어
이제 나는 무엇을 더 내놓을 것인가 생각하는데
꽃이 지거나 지지 않거나
너는 가고
나는 남는구나
나는 남지 말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