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거름을 내며

ree610 2024. 2. 29. 08:38

거름을 내며

ㅡ  김 영석

뽕나무밭에 잘 썩은 거름을 낸다
서로 다른 제 얼굴들을 버리고
한 철 빛나던 제 옷을 버리고
함께 썩어서 한 몸이 된 것
모든 빛깔을 버금고 검게 깊어져
고요한 흙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여기저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매화꽃이 봄볕에 눈이 부신데
마약 같은 거름 향내는 아득히 퍼져
푸른 바닷물을 풀어 놓고
높고 낮은 산들을 호명하여 세운다
한 줄기 바람이 일자
온갖 푸나무 빛으로 털갈이를 한
노루 멧돼지 산짐승들이
뽕나무 줄기 줄기로 내달리고
소를 몰로 쟁기질하던 늙은이는
워낭 소리 따라 뿌리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덧 매화나무 가지마다
물고기들이 은비늘 반짝이며 열려 있다.
뽕나무에 잘 익은 거름을 주고 있으면
아득히 먼 옛날 바다도 보이고
물고기들이 은빛 날개 새가 되어
흰 구름 푸른 하늘 나는 것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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