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사셀의 염소"
- 죄를 멀리 옮기시는 하나님 -
* 말씀: 레위기 16장 10절
레위기 16장 10절은 대속죄일(Yom Kippur)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보여준다.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가 성막 안,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지성소를 향한다. 그 중심에 두 마리의 염소가 있다. 한 마리는 여호와 앞에서 속죄제물로 드려진다.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광야로 보내진다. 죽음과 떠남, 피와 추방, 제단과 광야가 선명하게 대비된다.
여기서 하나님이 죄를 어떻게 다루시는지가 드러난다. 죄는 피로 덮이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죄는 공동체의 중심으로부터 멀리 옮겨져야 한다. 속죄는 용서의 선언인 동시에 제거의 사건이다.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 16:10)
1. 두 염소, 하나의 속죄
대제사장 아론은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 두 마리 염소를 세우고 제비를 뽑는다(레 16:8). 두 염소는 하나의 속죄 행위의 두 장면이다. 한 염소는 속죄제물로 드려지고, 그 피는 지성소와 제단을 정결하게 한다. 다른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머리에 얹고 사람 없는 불모의 땅으로 사라진다(레 16:21-22).
여기서 아사셀(Azazel)의 뜻은 논란이 있다. 어떤 이는 광야의 존재로, 어떤 이는 “멀리 떠나보냄”으로 해석한다. 핵심은 아사셀이 누구냐보다 그 염소가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공동체 밖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에 있다. 첫 번째 염소는 하나님 앞에서의 속죄를, 두 번째 염소는 공동체로부터 죄의 제거를 상징한다.
2. "산 채로" 추방함으로 완성되는 속죄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사셀 염소가 “산 채로” 여호와 앞에 세워진다는 점이다. 레위기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며 속죄는 피흘림과 긴밀히 연결된다(레 17:11). 그런데 여기서는 살아 있는 염소가 속죄의 한 부분을 담당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명백하다. 죄는 단지 제의적으로 처리하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공동체 한가운데에서 제거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이 고백의 배경에는 이런 제의적 상상력이 놓여 있다. 속죄는 죄를 덮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동체에서 완전히 추방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3.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죄 용서와 해방
히브리서는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다"(히 13:12)고 증언한다. 예수님은 지성소의 피흘린 염소로, 동시에 성문 밖으로 추방당한 아사셀의 염소를 상징한다. 십자가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추방이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이 절규는 대속죄일의 두 염소를 떠올리게 한다. 피흘리심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시고, 버려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있다. 아사셀 염소는 광야에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돌아오셨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죄의 추방이 영원한 것임을 확증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죄는 단번에, 영원히, 온전하게 이루어졌다(히 9:12). 그분 안에서 죄는 용서받고, 수치는 벗겨지며, 하나님과의 친교는 다시 열렸다. 이제 죄가 우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를 규정한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레위기 16장 10절의 아사셀 염소는 우리에게 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죄를 멀리 옮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드러낸다. 죄는 덮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죄는 멀리 옮겨져야 한다. 죄는 용서받고 제거되어야 하며 공동체는 정결하게 회복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가 자유인으로, 감사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할 이유이다.
**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죄악을 덮어 주실뿐 아니라
멀리 옮기시는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아사셀의 염소가 광야로 사라지듯,
우리를 짓누르는 죄책과 수치도 주님 안에서 떠나가게 하소서.
우리 죄를 지시고 성문 밖으로 나가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제 십자가 은혜 안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살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