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의 경계를 넘을 때
–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 -
* 말씀: 레위기 10장 1-2절
성막에 백성들의 환호가 울려 퍼졌다. 하나님의 불이 제단 위의 제물을 삼켰고, 온 회중은 엎드렸다(레 9:24).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에서 같은 하나님의 불이 제물이 아닌 사람을 삼켰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였다. 은혜와 거룩 사이의 긴장이 극한에 이르는 장면이다.
누가 감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이런 엄중한 형벌을 오늘 영적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레 10:1-2)
1. 다른 불: 예배에 섞인 인간의 임의성
나답과 아비후는 “번제단의 불”(레 6:12)이 아니라 "다른 불"을 드렸다.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다. 레위기의 제사 규례에서 실수로 범한 죄는 속죄의 길이 열려 있다(레 4장). 그러나 나답과 아비후의 행위는 그 범주 밖이었다.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벗어난 자의적 예배였다. 그러자 즉각적인 심판이 임했다.
더 비극적인 것은 나답과 아비후는 성막 바깥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가까운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자동으로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가까움은 특권인 동시에 책임이다. 거룩한 일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은 경외를 잃기 쉽다. 익숙함은 감사를 낳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감각을 낳는다. 예배를 섬기는 마음이 떨림을 잃을 때, 예배는 곧 자기 연출이 된다.
2. 거룩의 경계: 생명을 지키는 사랑의 울타리
성경에서 거룩의 경계는 생명을 억압하는 담장이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보존하는 울타리다.
레위기의 제사 규례 전체를 “하지 말라”의 금지목록으로 읽는 것은 오독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이렇게 오라”는 초대장이다.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 접근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친히 다가올 길을 정해 주셨다. 이것이 접근의 은혜이다. 진심은 소중하다. 그러나 진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경외 없는 진심은 쉽게 자기 확신으로 변질된다.
3. 같은 불, 다른 운명: 불의 심판
레위기 9장 불은 은혜의 불이고, 10장의 불은 심판의 불이다. 하나님이 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의 태도가 달라졌다. 같은 불이 누구에게는 기쁨이 되고 누구에게는 두려움이 되었다.
특히 1-2절에서 “여호와 앞에”라는 표현이 세 번 반복된다. 예배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드려진다. 그 앞에서는 어떤 임의성도 용납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사도행전 5장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떠오른다. 그들은 거짓으로 포장된 헌신을 드렸다가 같은 운명을 맞았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서 자기 성공과 야망을 채우고 있지는 않은가? 영적 지도자는 단지 열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무엇보다 거룩과 속됨을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레 10:10).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내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를 택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방식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나답과 아비후는 실패한 제사장이었고, 예수님은 완전한 대제사장이었다. 그들의 죽음은 불순종의 결과였고, 예수님의 죽음은 순종의 절정이었다(히 5:8-9). 거기서 참 예배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거룩의 폐지가 아니라 거룩의 성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히브리서는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시는 불이심이라”(히 12:29) 말씀한다. 바로 그 소멸하는 불 앞에서 우리에게는 큰 대제사장이 계신다(히 4:14-16). 그분이 먼저 지성소를 통과하셨기에 우리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 (히 10:19). 이 담대함과 떨림은 모순이 아니다. 그것은 십자가 안에서만 가능한 거룩한 역설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 그러나 친밀함과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예배한다.
** 기도문
거룩하신 하나님,
익숙함으로 무뎌진 우리의 마음을 깨워 주소서.
열심이 순종을 앞서지 않게 하소서.
주님께서 명하지 않으신 ‘다른 불’을 내려놓게 하소서.
예배의 중심에 사람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앞서게 하소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그러나 십자가 은혜 안에서 담대하게 주님께 나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