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새겨진 수치의 언어” - 어떻게 치유할까? -
* 말씀: 레위기 13장 45-46절
레위기 13장 45–46절은 매우 냉정하게 들린다. 나병(피부병)을 앓는 사람은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다. 그리고 진영 밖에 홀로 살아야 했다. 한 사람의 존재가 병명으로 축소되고, 사람이 사람들 사이에서 밀려나는 순간이다. 그래서 이 본문은 병보다 더 깊은 고통, 곧 “몸에 새겨진 수치의 언어”를 보여 준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레 13:45-46)
1. 수치는 어떻게 몸에 새겨지는가
‘나병’은 피부에 나타나는 비정상적 오염과 부정의 상태를 포괄하는 제의적 표현이다. 여기서 환자는 단지 아픈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질병 상태를 외쳐야 하는 사람이다. “부정하다”라는 말은 진단이지만, 동시에 낙인이다. 병은 몸에 생긴 것이지만, 수치는 그 몸 전체를 부끄러움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는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나는 가까이 오면 안 되는 사람이다.” 이 문장들은 피부에 보이지 않아도 영혼에 문신처럼 남는다. 내면화된 수치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런 수치심은 인간을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움츠러들게 하는 영적 어둠이다. 수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존재 전체를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데 있다. 그리하여 몸은 병들고, 마음은 닫히고, 영혼은 “진영 밖”으로 밀려난다.
2. 수치의 치유는 왜 공동체의 회복을 필요로 하는가
레위기 13장의 비극은 질병 자체보다 “진영 밖”에 있다는 데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이름을 얻고, 기억되고, 회복된다. 그런데 수치는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낸다. 수치의 상처는 혼자 견디는 방식으로 완전히 치유되지 않는다.
참된 공동체는 완벽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가 안전하게 다시 들어올 수 있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신앙 공동체는 수치를 증폭시키는 법정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이 다시 숨을 쉬게 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 한 사람을 살리는 말과 기도, 기다림의 손, 식탁의 교제가 모두 치유의 통로가 된다. 수치의 반대말은 명예가 아니라, “받아들여짐”이다.
3. 예수님은 몸에 새겨진 수치를 어떻게 치유하시는가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벗겨지고 조롱당하고 성문 밖으로 내몰리셨다(히 13:12-13). 진영 밖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시기 위함이었다. 부정하다 여겨지던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셨다. 그 손길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그것은 “너는 여전히 만질 수 있는 존재다”라는 선언이다. “너는 가까이 오면 안 된다”를 예수님은 “내가 네게 가까이 간다”로 바꾸셨다.
예수님은 수치를 멀리서 치료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의 고통과 모욕을 몸으로 겪으셨다. 십자가는 단지 육체의 고난이 아니라, 공개적인 수치의 자리였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에 새겨진 모든 수치의 언어를 자기 몸으로 받아내셨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 사함의 사건일 뿐 아니라, 수치 치유의 사건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치유란 상처가 더 이상 나의 최종 이름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부정하다”라고 외치게 만들던 세상의 언어를 멈추게 하셨다. 그대신 “내 사랑하는 자”라는 새 이름을 주셨다. 그러므로 치유는 상처의 삭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회복이다. 상처가 더 이상 내 최종 이름이 되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복음의 치유이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몸에 새겨진 수치의 언어는 사람을 고립시키고 자기 혐오 속에 가둔다. 그 낙인은 마음과 영혼에까지 새겨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친히 진영 밖으로 나가시고, 수치의 언어를 몸으로 짊어지심으로, 상처 입은 자를 다시 공동체와 하나님 앞으로 불러들이신다. 그러므로 치유는 내가 내 상처보다 더 큰 존재임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 기도문
사랑의 주님!
우리 몸과 마음에
병보다 더 깊이 새겨진 수치의 낙인이 있습니다.
“나는 부정하다” 외치던 영혼이
예수님 안에서 새 이름을 얻게 하소서.
이제 우리의 상처가 정죄의 흔적이 아니라
주님을 찬양하는 은혜의 증언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