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병풍을 치니 - 이현주 - 찬 바람이 좀 들어오기에 병풍을 쳤습니다. 여섯 폭 병풍입니다. 한 폭에 글자 한 자씩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

ree610 2025. 8. 13. 08:52

병풍을 치니

- 이현주 -


찬 바람이 좀 들어오기에
병풍을 쳤습니다.
여섯 폭 병풍입니다.
한 폭에 글자 한 자씩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이라.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는
공자님 말씀을
무위당 장 선생께서
저에게 써주신 글씨입니다.
병풍을 치니 방 안이
한결 아득합니다.
병풍 칠 생각을 한
아내가 참 고맙습니다.
나는 병풍이 있는 줄 알았지만
그것을 칠 때와 장소가
따로 있는 줄로만 알았기에
이렇게 근사하고 좋은 방을
꾸밀 줄 몰랐던 것입니다.
있으면 뭘 합니까?
그것을 써야 할 때
써야 할 곳에 쓰지 않는다면
있지만 없는 것입니다.
병풍도 오래만에 기분이 좋아
나를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