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아/삶

춤추는 식물 - 정용화 연신내 문병 간 병실에서 노시인을 만났다 그가 꺼내놓는 모든 소리의 끝이 젖어 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내는

ree610 2025. 7. 29. 08:28

춤추는 식물

- 정용화

연신내 문병 간 병실에서 노시인을 만났다
그가 꺼내놓는 모든 소리의 끝이 젖어 있다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아내는
화려하지도 않고 향기도 없는 무초를 닮아 있었다
어쩌다가 아내는 그림자를 몸속으로 끌어들여
식물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일까
한곳에 뿌리내린 식물처럼
침대를 떠나본 적 없는 그녀의 입속에는
미처 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이 갇혀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멈춰버린 눈동자 속에는
야생을 밀어내고 순해진 세월만 담겨 있다
먼곳을 응시하는 눈빛이 천진해서 오히려 눈부시다
노시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을 들려주고
사랑의 시를 지어 귀에 심은 지 팔 년 만에
오늘 처음으로 손가락이 움직이고
아주 잠깐이지만 눈을 맞추었다고
그의 눈에도 오래된 슬픔이 반짝 빛났다
소리를 들려주면 이파리가 춤을 춘다는 무초처럼
식물이 온 힘으로 밀어 올린 그 작은 움직임이
어떤 간절함 속에서 춤으로 피어난다
어둠을 적시며 비가 내린다
이름을 잃어버린 그림자 속에서
야생이 우는 계절이면 춤추는 이파리 사이로
연한 무초꽃이 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