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의 적은 가짜 동지다!
* 말씀: 마가복음 3장 6절
한 사람의 굳어버린 마른 손이 펴졌다. 그러나 회당에는 기쁨보다 살기가 감돌았다. 바리새인들은 밖으로 나가 헤롯당과 함께 “즉시”(곧)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의논했다. 성향과 이해관계가 달랐던 두 집단이 예수님을 공통의 적으로 삼아 손을 잡은 것이다. 그러나 같은 대상을 미워한다고 참된 동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사랑이 아니라 공동의 적대가 만든 관계는 거짓 연대일 뿐이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막 3:6)
1. 적의 적이 만든 거짓 연대
마가복음 2장부터 이어진 다섯 번의 논쟁은 3장 6절에서 죽음의 모의로 절정에 이른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십자가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죄인을 용서하고, 세리와 함께 식사하며, 안식일에 병든 이를 고치신 일이 기존 질서에는 위협이 되었다.
예수님은 폭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다만 사람을 제도보다 앞에 세우셨다. 그러나 자기 자리를 중심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주변의 사람’이 중심에 서는 일은 위험한 사건이었다. 진리는 때로 거짓 평화를 깨뜨리는 거룩한 불편함이다.
2. "주변의 사람"을 한가운데 세우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한가운데 일어서라”(막 3:3)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을 중심에 세우셨다. 그의 존엄은 손이 고쳐진 뒤에 생긴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치유에 앞서 그를 공동체 한가운데 세우심으로 이미 존귀한 존재임을 드러내셨다. 치유는 한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그를 보지 못하던 공동체의 왜곡된 시선을 고치는 사건이었다.
반대로 중심에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은 회당 밖으로 나가 죽음을 모의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은 중심에 서고, 중심을 독점하던 사람들은 생명의 자리 밖으로 나갔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역전이다.
3. 죽음을 모의한 사람과 생명을 내어 준 예수
예수님은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중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침묵했다. 그러나 회당을 나가서는 “즉시” 예수님을 죽일 일을 의논했다. 선을 행할 때는 침묵했고, 죽음을 계획할 때는 신속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단순히 증오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완고함을 보시며 분노하는 동시에 슬퍼하셨다. 슬픔 없는 분노는 또 다른 적대를 만들지만, 예수님의 분노는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을 향한 비탄이었다(막 3:5). 그들의 모의는 마침내 십자가로 이어졌다.
십자가는 거짓 동맹이 만든 죽음의 자리였으나, 하나님은 그곳을 화해와 생명의 자리로 바꾸셨다.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우리 역시 공동의 적을 희생양 삼아 내부 결속을 다진다. 그리고 나와 성향이 다른 불편한 타자를 끊임없이 밀어낸다. “그들이 틀렸다”고 정죄하며 또 하나의 이기적인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러나 적대는 사람을 일시적으로 묶을 수는 있어도, 결코 생명력 있는 공동체를 빚어내지는 못한다. 적의 적은 거짓 동지다. 참된 공동체는 무력하고 상처 입은 자를 한가운데 세워주는 따뜻한 환대에서 시작된다.
** 기도문
생명의 하나님,
진리보다 내 자리와 체면을 지키려는 욕망을 버리게 하소서.
공동의 적을 만들어 마음을 모으지 않게 하소서.
분노 속에서도 사랑의 탄식을 잃지 않게 하소서.
주변으로 밀려난 사람을 한가운데 세우게 하소서.
십자가로 원수 된 담을 허무신 예수님을 본받아,
오늘도 적을 만들기보다 이웃을 만드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