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영성

칼보다 먼저 사람을 보내라 * 말씀: 여호수아 22장 13-14절 사람보다 칼을 먼저 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만나서 묻기보다 판단하고 편을

ree610 2026. 7. 15. 08:21

칼보다 먼저 사람을 보내라
* 말씀: 여호수아 22장 13-14절

우리는 사람보다 칼을 먼저 드는 시대를 살고 있다. 만나서 묻기보다 판단하고, 사정을 듣기보다 편을 가르며,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말의 칼을 먼저 휘두른다. 여호수아 22장의 이스라엘도 그러한 위기 앞에 섰다.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난 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는 약속을 지키고 요단 동쪽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들이 요단 언덕에 "보기에 큰 제단"(수 22:10)을 세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서쪽 지파들은 이를 하나님을 배반한 제단으로 판단하고 실로에 모여 싸우려 했다.
전쟁은 악의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때로는 확인하지 않은 판단과 충분히 듣지 않은 분노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마지막 순간에 칼을 들기보다 먼저 사람을 보냈다.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수 22:13)

1. 거룩한 열심도 오해할 수 있다

서쪽 지파의 분노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은 브올의 범죄(민 25장)와 아간의 죄(수 7장)가 공동체 전체에 재앙을 가져왔던 일을 기억했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그러나 동기가 옳다고 판단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
사람은 행동을 보고 보이지 않는 의도까지 쉽게 단정한다. 한마디의 말, 짧은 문자, 소문의 일부만 듣고 한 사람의 전부를 판단한다. 거룩한 열심도 경청을 잃으면 위험한 폭력이 된다.

2. 공격보다 먼저 대화하라

이스라엘은 제사장 비느하스와 각 지파의 지도자 열 사람을 요단 동쪽으로 보냈다. 군대가 아니라 대표단을 보내 공격보다 대화를 선택했다. 이것이 공동체를 살린 결정이었다. 분노로 창을 들었던 비느하스(민 25장)가 이번에는 창 대신 질문을 들고 갔다.
그들의 첫 질문에는 비난과 긴장이 담겨 있었다. 완벽한 대화는 아니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었다. 전쟁은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는 데서 시작되지만, 대화는 상대를 다시 사람으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3. 분열의 제단이 증거의 제단으로

동쪽 지파의 설명은 예상과 정반대였다. 그 제단은 제사를 드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훗날 서쪽 지파의 자손들이 자신들의 후손에게 "너희는 여호와와 상관이 없다"고 말할까 두려워, 한 하나님을 섬기는 한 백성이라는 증거를 세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제단의 이름을 “엣”(‘증거)라 불렀다(수 22:34).
서쪽 지파에게 배교의 상징처럼 보였던 제단은 동쪽 지파에게 소속의 표지였다. 분열을 위한 제단이 아니라 분열을 막기 위한 제단이었다. 경청은 가려져 있던 진실을 드러냈다. 설명을 들은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은 기뻐했고, 전쟁은 멈추었다.

복음은 하나님이 죄인 인간을 위해 먼저 보내신 예수님 이야기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요 3:16).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멀리서 인간을 정죄하지 않으셨다. 친히 사람의 자리로 내려 오셨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요 1:14). 죄인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셨으며(눅 19:5), 사마리아 여인의 사정을 들으셨다(요 4:7). 십자가는 적대하는 세상 한가운데 들어오셔서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화평을 이루신 하나님의 길이었다(엡 2:14-16).

* 마무리하며 - 김지철 목사

성숙한 공동체는 갈등이 없는 공동체가 아니다. 갈등이 생겼을 때 뒷말 대신 만남을 선택하고, 단정 대신 질문을 택하는 공동체다. "왜 그렇게 했는가?", "혹시 내가 오해한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 하나가 칼보다 강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소문보다 사람을 만나고, 판단보다 사정을 들으며, 승리보다 관계의 회복을 구한다. 칼은 관계를 끊지만, 경청은 끊어진 관계를 다시 잇는다.
그러므로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내야 한다. 공격하기 전에 묻고, 단정하기 전에 듣고, 상대를 적으로 만들기 전에 다시 형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도 작고 큰 전쟁과 갈등 앞에서 우리를 살리는 것도 다르지 않다. 칼이 아니라 사람이다.

** 기도문

화해의 하나님,
성급한 판단에서 우리를 지켜 주소서.
부분만 보고 사람의 전부를 단정하지 않게 하소서.

분노보다 먼저 질문하고,
공격보다 먼저 듣게 하소서.

십자가로 원수 된 담을 허무신 예수님을 따라,
칼보다 먼저 사람을 보내는 평화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