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오빌로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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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모두 한 사람의 이름으로 문을 엽니다. 누가는 첫 책에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기록한다고 말하고, 두 번째 책에서도 다시 그 이름을 부릅니다. 대부분의 독자는 이 대목을 가볍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사실 이 이름 하나가 누가-행전 전체의 분위기를 바꿉니다. 누가가 누구를 향해 이 방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갔는가 하는 문제는, 단순한 수신인 확인이 아니라 이 책의 성격 자체를 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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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먼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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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부터 흥미롭습니다. 데오빌로는 헬라어 Θεόφιλος, 곧 “하나님”과 “사랑하는 이, 벗”이라는 뜻을 지닌 요소가 결합한 이름입니다. 그래서 보통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 정도로 이해됩니다. 뜻만 놓고 보면 라틴어 아마데우스와도 꽤 닮았습니다. 둘 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품고 있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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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흥미로운 점은, 이 이름이 생각보다 드문 이름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옥스퍼드대학교의 LGPN, 곧 그리스 인명 사전 자료에 따르면 데오빌로라는 이름은 고대 지중해 그리스어권에서 매우 널리 쓰였고, 가장 많이 확인되는 이름들 가운데서도 10위 안에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누가복음 첫머리의 데오빌로는, 뜻이 아름다워서 꾸며낸 상징적 이름처럼만 보기보다, 실제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던 살아 있는 인명으로 먼저 읽는 편이 자연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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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인가, 실존 인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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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오래전부터 데오빌로를 특정 개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독자 전체를 가리키는 상징적 이름으로 읽으려는 해석도 있었습니다. 이름의 의미만 보면 그 해석은 분명 그럴듯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누가는 단지 “데오빌로”라고만 하지 않고, “각하”라는 표현을 덧붙입니다. 이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꿉니다. 갑자기 이 이름은 추상적인 상징이라기보다, 실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가진 한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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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누가복음의 서문은 생각보다 사적인 인사말 같지 않습니다. 누가는 아주 공들여 정리한 자료를 내놓으면서, 왜 이 글을 쓰는지, 어떤 방식으로 기록했는지, 무엇을 확실하게 해 주려는지를 밝힙니다. 이런 서문은 고대 문헌 가운데서도 실제 후원자나 권위 있는 독자에게 책을 바칠 때 자주 나타나는 형식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그래서 데오빌로는 이름 뜻을 활용한 문학적 장치라기보다, 누가가 실제로 염두에 두고 설득하려 한 독자였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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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체적인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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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데오빌로는 누구였을까요. 단순히 재력 있는 후원자였을까요. 로마 행정 체계 안의 고위층 인물이었을까요. 아니면 유대 사회의 중심부와 연결된 사람이었을까요. 여러 견해가 나왔지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데오빌로와 연결하는 가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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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견해가 주목받은 이유는 단순히 이름이 같아서가 아닙니다. 실제로 “대제사장 데오빌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고고학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근처에서 발견된 납골함 명문에는 “대제사장 데오빌로의 손녀 예호하나”라는 표현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곧 누가복음의 데오빌로를 확정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이름이 1세기 유대 최고위층과 연결된 실재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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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누가복음 첫머리의 “각하 데오빌로”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막연한 이상적 독자가 아니라, 실제 권력과 교양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일 수 있다는 생각이 훨씬 구체성을 띠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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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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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읽기 시작하면 누가-행전의 결도 달라집니다. 이 책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 돌려 읽는 경건한 이야기 모음이 아니라, 아주 신중하고 치밀하게 정리된 변증처럼 보입니다. 누가는 소문을 적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자세히 살핀 사실을 차례대로 기록한다고 밝힙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데오빌로가 이미 들은 내용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가벼운 권면이 아니라, 검증을 견디려는 글의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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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데오빌로 문제는 사소한 호기심이 아닙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얼마나 날카롭게 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열쇠에 가깝습니다. 데오빌로가 상징적 이름이라면, 이 책은 넓은 독자층을 향한 보편적 서문처럼 읽힐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가 실제 고위 인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누가는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증언과 질서를 갖추어 한 사람을 설득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이 평범한 신자가 아니라 사회적 무게를 지닌 인물이었다면, 누가-행전의 첫머리는 생각보다 훨씬 긴장된 자리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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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름의 뜻도 더 묘한 울림을 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 처음에는 상징처럼 들리던 이름이, 실제 인물의 이름일 수도 있다는 사실 앞에서 오히려 더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게다가 그 이름은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널리 쓰이던 흔한 이름이기도 했습니다. 누가는 추상적인 이상 독자에게 책을 바친 것이 아니라, 현실의 이름을 가진 한 사람에게 복음의 진실을 들이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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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금 남는 인상은 분명합니다. 데오빌로를 상징적 이름으로 읽는 해석은 가능하지만, 누가복음의 표현, 서문의 형식, 그리고 이후의 자료들을 함께 놓고 보면 실제 인물로 보는 쪽이 훨씬 또렷합니다. 문제는 이제 그가 실존 인물이었는가를 묻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사람이었기에 누가가 그 이름을 책의 첫머리에 두고, 이토록 정돈된 서문을 바쳤는가를 묻게 됩니다. 너무 익숙해서 지나쳤던 첫 문장이, 사실은 이 두 권 전체를 여는 가장 조용하고도 예리한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 김한원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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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Alexander, Loveday C. A. The Preface to Luke’s Gospel: Literary Convention and Social Context in Luke 1.1–4 and Acts 1.1.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Anderson, Richard H. “Theophilus: A Proposal.” Evangelical Quarterly 69, no. 3 (1997): 195–216.
Barag, Dan, and David Flusser. “The Ossuary of Yehoḥanah Granddaughter of the High Priest Theophilus.” Israel Exploration Journal 36, no. 1/2 (1986): 39–44.
Creamer, Jennifer M., Aida B. Spencer, and Francois P. Viljoen. “Who is Theophilus? Discovering the Original Reader of Luke-Acts.” In die Skriflig 48, no. 1 (2014): 1–7.
Lexicon of Greek Personal Names (LGPN). Oxford: Faculty of Classics, University of Oxford. Database: LGPN Search Datab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