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굳이 손을 내미신 예수님: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방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말씀으로 고치실 때도 있었고,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낫게 하실

ree610 2026. 3. 28. 07:55

굳이 손을 내미신 예수님:

예수께서 병자들을 고치신 방식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말씀으로 고치실 때도 있었고,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낫게 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손을 내밀어 만지신 장면들이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치유가 능력의 행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가 몸소 닿으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 손을 내미신 자리

나병 환자를 고치신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8:3, 마가복음 1:41, 누가복음 5:13은 공통으로,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손을 대다”로 쓰인 말은 “하프토마이”(ἅπτομαι)입니다.
이 말은 이 문맥에서 무엇보다 실제로 닿는 접촉을 가리킵니다.
살짝 시늉만 하는 몸짓이 아니라, 거리를 두지 않는 손길입니다.

그 점이 중요합니다.
나병 환자는 단지 병든 사람이 아니라,
오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를 고치시기 전에 먼저 만지셨습니다.
깨끗해진 다음에 받아주신 것이 아니라, 받아주심 안에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 눈과 귀에 닿은 손

시각 장애인들의 눈을 만지신 장면도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9:29에서는 두 맹인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십니다.
또 벳새다의 맹인을 고치실 때에는 그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눈에 침을 바르시고 다시 안수하십니다.

여기서 안수에 쓰인 말은 “에피티데미”(ἐπιτίθημι)입니다.
기본 뜻은 위에 두다, 얹다입니다.
복음서에서는 병자 위에 손을 얹는 실제 행위를 가리킬 때 자주 쓰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어떤 추상적인 상징보다 먼저, 눈먼 사람의 몸 위에 놓인 주님의 손을 보여줍니다.

어둠 속에 오래 머물던 사람에게, 빛보다 먼저 닿은 것이 예수님의 손이었다는 사실은 가볍지 않습니다.
보게 하시는 분은 먼저 만지시는 분이었습니다.ㅤ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실 때도 그 손이 먼저 나아갑니다.
마태복음 8:15에서는 그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났다고 기록합니다.
십팔 년 동안 꼬부라져 있던 여인에게도 누가복음 13:13은 예수께서 안수하시니 그가 곧 펴졌다고 전합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는 더 인상적인 장면이 나옵니다.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십니다.
그리고 “에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장면은 조금 낯설고, 그래서 더 오래 남습니다.
예수께서는 고통을 멀찍이서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막혀 있는 곳에 직접 닿으셨고, 굳게 닫힌 자리를 몸으로 열어 가셨습니다.


* 원수에게까지

누가복음 22:51은 더 놀랍습니다.
예수를 잡으러 온 무리 가운데,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가 잘렸을 때, 예수께서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포박하러 온 편의 상처에 손을 대셨다는 사실은 쉽게 지나갈 수 없습니다.
주님의 손길은 호의적인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해치려는 자리에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4:40도 같은 방향을 보여줍니다.
해 질 무렵 사람들이 온갖 병자를 데려오자, 예수께서 한 사람 한 사람 위에 손을 얹어 고치셨습니다.
그분에게 접촉은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라, 생명이 흘러가는 통로였습니다.

* 거룩함의 방향

예수께서 손을 대신 이 치유의 장면들은 한 가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병든 몸과 상한 삶이 그분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거룩함과 생명이 그 자리로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손길은 단순한 제스처가 아닙니다.
“하프토마이”의 접촉도, “에피티데미”의 안수도, 멀리서 구경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고통의 현장 한가운데로 들어오셔서, 사람을 다시 일으키시는 성육신의 방식입니다.

주님은 말씀만으로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번 굳이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가까이 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의 치유는 단지 병을 없애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끊어진 접촉을 회복하는 일이었고, 버려진 몸이 다시 사람답게 받아들여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서 주님의 손은 늘 묵직합니다.
그 손은 병만 고치지 않고, 사람을 다시 사람으로 돌려놓습니다. 평화 😂
- 김한원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