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

예수의 십자가 위 가상칠언의 도전: 기독교는 주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면서 남긴 일곱 마디의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

ree610 2026. 4. 4. 22:20

예수의 십자가 위 가상칠언의 도전: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남기신 일곱 마디의 말씀을 ‘가상칠언(架上七言)’ 또는 ‘십자가상의 일곱 말씀’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교회 전통에 따르면, 이 일곱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동안 차례대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전해진다. 이 가상칠언은 특정 복음서에 한꺼번에 기록된 것이 아니고,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네 복음서에 각각 나뉘어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내용에 근거하여 그 순서가 정해진 교회 전통에 따라서 하나씩 살펴보는 것은 고난주간을 맞이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자신의 신앙을 깊이 성찰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첫째 말씀은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명령을 수행한 로마 병사들과,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 가운데서 자신을 죽이려 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올리셨다. 이 기도는 “원수를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가장 극명하게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죽어가시면서까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성숙한 삶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셨다. 어찌 보면 로마 병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직접 죽이는 가해자였던 동시에 폭력적인 구조 속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상명하달의 군대 체계와 특권층 중심의 종교 체계가 그들의 행동을 규정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의 첫째 말씀에서, 기독교인을 기독교인답게 하는 가장 높은 기준이 원수 사랑에 있음을 깊이 새겨야 한다.

둘째 말씀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두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간청했다. 그 강도는 사회적으로는 ‘범죄자’였고, 종교적으로는 ‘저주받은 자’였다. 로마 제국의 법도, 유대 종교의 율법도 그를 구원의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들으시고 낙원을 약속하셨다. 우리는 예수의 둘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만든 혐오와 배제의 모든 경계를 넘어 누구라도 포용하시는 사랑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이때 예수께서 말씀하신 낙원은 죽어서 도달하는 어떤 곳을 의미하기 이전에, 혐오와 배제로 고통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그 자체에 낙원이 존재함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셋째 말씀은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시라.”(요 19:26-27)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아래 서 있는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보시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적인 따뜻한 정을 드러내셨다. 이어서 제자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시라”라 말씀하시며, 자신의 어머니를 돌보아 드리라고 당부하셨다. 공생애 초기에 예수께서는 자신을 찾아온 가족들을 향해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다”(막 3:33-35)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두 말씀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 가부장적인 혈연공동체를 넘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음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부정부패와 사회문제들이 혈연공동체에 집착할 때 일어나고 있는가?

넷째 말씀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마 27:46, 막 15:34)이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의 울부짖음은 폭력 앞에 내던져진 자로서의 처절한 절규였다. 이 절규 앞에 계신 하나님은 저 멀리 초월의 다른 공간에만 홀로 머물러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절규하는 아들의 고통을 안타까워하시며 차라리 당신이 죽는 것이 낫겠다는 심정으로 그 고통을 함께 나누셨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런 하나님을 향해서 강력한 신뢰의 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신 것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 역시 하나님의 부재처럼 보이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섯째 말씀은 “내가 목마르다.”(요 19:28)이다. 예수께서는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아시고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다. 목마르다는 것은 예수께서 육체적 고통을 실제로 극심하게 겪고 계셨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언이다. 그러나 예수께서 ‘목마르다’고 표현하신 갈증의 내용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목마른 갈증을 넘어서 억압당하는 자들의 애처러운 상황에 대한 갈증, 불의한 세상에서 절실히 필요한 정의에 대한 갈증, 강제적인 죽음이 너무 쉽게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갈증 등을 포괄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로마 제국의 억압과 착취, 폭력 앞에서 고통당하며 신음하는 모든 이들의 갈증을 자신의 온몸으로 체험하며 목마르다고 하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내가 목마를 때에 너희가 마시게 하였다.”(마 25:35)라며 목마름의 현장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들’과 당신을 일체화하신 예수처럼, 사회적 약자들의 갈급함에 그들의 심정으로 응답해야 할 것이다.

여섯째 말씀은 “다 이루었다.”(요 19:30)이다. 예수께서는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다 이루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자신의 생애와 가르침, 사랑과 저항의 완성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다 이루었다”라는 단어 ‘테텔레스타이’는 ‘완성되었다’, ‘마무리되었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께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성하러 왔다.”(마 5:17)라고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율법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완성하셨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내내 로마 제국의 폭력과 종교 특권층의 위계질서에 저항하며 ‘하나님의 나라’라는 대안 공동체를 선포하셨다. 그는 병자들을 치유하셨고, 세리나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셨으며, 여성들과 아이들을 따뜻하게 환대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철저히 실천하신 것 때문에, 십자가 위의 죽음에 이르셨다. 그 점에서 우리는 예수의 죽음을 실패가 아닌 완성으로 선언할 수 있다.

마지막 일곱째 말씀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33년 인생과 공생애 3년의 여정을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감하셨다. 당신의 인생은 사생아로 출발해서 그나마 가장이었던 아버지 요셉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목수 일을 감당하며 어머니와 형제들을 힘겹게 돌보아야 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이루어졌다는 고백이었다. 또한 당신의 공적 사역이 민중들의 환영 속에서 화려하게 데뷔했던 것과는 달리, 민중들은 물론 측근 제자들까지 배신해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되었지만, 그것조차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고백이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자신이 비록 십자가 위의 죽음으로 세상의 삶을 마감하고 있지만, 그 죽음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질 것을 믿음과 소망 가운데 고백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가 부활의 조건이고, 부활은 십자가의 영광임을 늘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예수의 가상칠언은 십자가 위에서의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그의 삶과 가르침을 압축한 것이었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었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가상칠언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올바로 인식하는 동시에, 그것을 자기 삶의 지침으로 삼아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원수와 같은 사람이라도 용서하고, 차별과 배제 가운데 있는 그 누구와도 연대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혈연의 가족 공동체를 넘어서 어떤 상대라도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인정하고, 우리와 함께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갈급한 상황에 있는 이웃들의 필요를 언제 어디서나 신속히 채워주어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자기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확장해야 하며, 삶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삶이야말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이 시대에 예수를 따라가는 참된 길이 될 것이다.

에큐메니안, 예장 대전환 신학위원 칼럼
- 정종훈 (연세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