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적의삼락 - 適意三樂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치를 찾아가

ree610 2026. 4. 9. 06:59

적의삼락 - 適意三樂

문을 닫고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맞는 경치를 찾아가는 것, 이 세 가지야말로 인간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閉門讀適意之書 - 페문독적의지서
開門接適意之客 - 개문접적의지객
出門尋適意之景 - 출문심적의지경

위 내용은 조선 4대 문장가로 불리는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말한 ‘적의삼락(敵意三樂)’이다.세속적 공명이나 부귀가 아니라 독서·교유·산수 유람을 인생의 참된 낙으로 삼는 선비적 삶의 태도를 잘 보여준다.

명나라 동기창(董其昌)은 그의 예술론 『화지(畫旨)』에서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여행하라” 하였다.
讀萬卷書 - 독만권서
行萬里路 - 행만리로

학문과 체험을 함께 갖추어야 참된 안목이 생긴다는 뜻인데 나는 여기에 더하여 ‘만 명의 벗과 교제하라’를 추가 하고 싶다.
‘交萬人友 - 교만인우’

신흠이 말한 ‘적의삼락(適意三樂)’은 소박하다. 문을 닫고 책을 읽고, 문을 열어 벗을 맞고, 문을 나서 산수를 찾는다. ‘닫힘[閉門]’과 ‘열림[開門]’과 ‘떠남[出門]’, 그 세 가지 동작 속에 한 인간의 삶이 모두 들어 있다.

닫힌 문 안의 독서는 세상으로부터의 철수가 아니라, 세상을 다시 보기 위한 준비다. 책은 타인의 사유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숲이다. 그 숲을 거닐며 선비는 자신의 마음을 단정히 세운다. 이것이 ‘정(靜)’의 공부다.

문을 열어 벗을 맞이하는 일은 ‘동(動)’의 공부다. 혼자만의 성찰이 자칫 독선으로 굳어질 때, 벗은 거울처럼 다가와 생각의 모서리를 다듬어 준다. 교유는 단순한 사교가 아니라, 사유가 서로를 통과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문을 나서 경치를 찾는 일. 산수는 인간의 언어가 닿지 않는 자리에서 인간을 낮춘다. 자연 앞에서 비로소 생각은 비워지고, 비워진 자리에 사물의 본모습이 들어온다. 이것이 ‘관(觀)’의 공부다.

명대의 서화가 동기창이 『화지(畫紙)』에서 말한 ‘讀萬卷書 行萬里路’는 이 세 갈래를 다른 결로 풀어낸 말이다. ‘책을 읽는 일은 정신의 여행이고, 길을 걷는 일은 육신의 독서다’. 여기에 덧붙여 말하는 ‘交萬人友’ 또한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사람을 겪는다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더 깊은 체험이며, 한 번의 여행보다 더 넓은 세계를 건너는 일이다.

신흠의 ‘적의삼락’이 ‘마음에 맞음(適意)’을 말한다면, 동기창의 격언은 ‘안목(眼目)’을 말한다. 그러나 둘은 다르지 않다. 마음에 맞는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정신과 만나는 일이며, 마음에 맞는 벗을 맞는다는 것은 세상의 다양함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마음에 맞는 산수를 찾는다는 것은 사물의 이치를 체득하는 일이다.

선비의 풍류는 ‘향락’이 아니라 ‘균형’이다. 독서로 깊이를 얻고, 여행으로 넓이를 얻고, 교유로 따뜻함을 얻는다. 깊이만 있으면 고루해지고, 넓이만 있으면 산만해지며, 교유만 있으면 가벼워진다. 세 가지가 함께할 때 비로소 사물을 보는 눈이 맑아진다.

현대의 지식인에게도 이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많이 읽되 편협하지 않고, 많이 다니되 표면에 머물지 않으며, 많이 만나되 사람을 수단으로 삼지 않는 태도. 문을 닫을 줄 알고, 문을 열 줄 알며, 문을 나설 줄 아는 사람. 그가 곧 세상을 관조(觀照)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적의삼락’은 결국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세상을 소유하려 하지 말고, 세상을 통과하라. 그때 책과 길과 사람이 하나의 풍류가 되고, 지식은 비로소 안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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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때문에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저녁노을만 하염없이 음미하며 바라보았다.”
情又不忍 - 정우불인
細玩夕陽 - 세완석양

- 霞田 박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