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엄마가 집을 남동생한테 준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는 돌아와서 상속포기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ree610 2026. 4. 1. 08:10

엄마가 집을 남동생한테 준다고 했다.
그리고 나한테는 돌아와서 상속포기 서류에 사인하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어제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집 명의를 이제 남동생 앞으로 넘길 거라고 했다.
시간 될 때 내려와서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말투는 참 담담했다.
너무 담담해서,
마치 원래부터 당연했던 일처럼 들렸다.

나는 그냥
“알겠어”
라고 했다.

전화 끊고 나니까 남편이 한마디 했다.

“그럼 우리 예전에 집 수리할 때 보탰던 500만 원 얘기는 하셨어?”

나는 말했다.

“아니.”

남편은 잠깐 멈췄다.
그리고 더는 아무 말 안 했다.

근데 나는 안다.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차마 입 밖으로 못 꺼낸 거다.

왜냐면 그런 말들은 너무 아프고,
또 너무 맞는 말이니까.

사실 엄마는 3년 전부터 이미 분명하게 말했었다.

너는 딸이니까 결국 시집간 사람이고,
집은 원래 아들한테 가는 거라고.

그때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그 뒤에 집 수리할 일이 있었고,
나는 500만 원을 보탰다.

그때 엄마는
“일단 네 돈 좀 쓰고, 나중에 갚을게”
라고 했다.

나는 그냥
“됐어, 안 갚아도 돼”
라고 했다.

이제 진짜 집이 남동생 앞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그 500만 원 얘기는,
엄마가 끝까지 한마디도 안 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일처럼.
딸이 돈 보태는 건 원래 당연한 일인 것처럼.
설명도, 미안하다는 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다 남동생이 전화기를 넘겨받더니 나한테 말했다.

“누나, 걱정하지 마.
엄마 나중에 나이 들면 내가 모실게.
누나는 신경 안 써도 돼.”

나는 또 말했다.

“그래.”

그런데 전화를 끊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그거였다.

나중에 엄마가 진짜 아파서 입원이라도 하게 되면,
쟤가 나한테 전화해서

“누나, 며칠만 와서 좀 봐줘.”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나는 안다.

분명 그럴 거다.

그리고 그때 가서
내가 정말 안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집은 아들이 가져간다.

그런데 책임까지 정말 아들 몫으로만 남는 건 아니다.

말은 다들 그럴듯하게 한다.
하지만 막상 손이 가야 하는 순간이 오면,
결국 많은 일은 딸한테 떨어진다.

나는 그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너무 많이 봤다.

나중에 남편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내려가서 사인할 거야?”

나는 말했다.

“응.”

그러자 남편이 또 물었다.

“그럼 그 500만 원은?”

나는 말했다.

“그냥 엄마한테 쓴 돈이라고 생각하려고.”

남편이 뭐라고 했냐고?

아니.
아무 말도 안 했다.

근데 그때 나를 보던 눈빛은
지금도 기억난다.

원망도 아니었고,
화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침묵이 더 아팠다.

왜냐면 나는 아니까.

남편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분명 이런 생각이었을 거다.

장모님은 이미 당신을 가족 밖 사람처럼 대하는데,
당신은 왜 아직도 그렇게 혼자 애쓰고 있냐고.

솔직히 이 집에서 나는 딸인 것 같으면서도,
정작 가장 아끼는 자식은 아닌 사람 같았다.

돈 필요할 때는 나를 찾고,
사인할 일 있을 때도 나를 찾고,
철들라고 할 때도,
양보하라고 할 때도,
따지지 말라고 할 때도
항상 나를 찾는다.

그런데 막상 집 얘기가 나오면,
딸인 나는 처음부터 밖에 있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다.

원래 계속 그랬다.

예전에는 그래도 나 스스로를 속일 수 있었다.

괜찮다고.
가족이니까 그렇다고.
딸이면 너무 따지지 말아야 한다고.

그런데 이번에 내가 직접
“상속포기”
그 글자에 사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그제야 알겠더라.

이건 서운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었다.

그냥 허했다.

속이 텅 빈 것처럼.
서늘하게 비어 있는 느낌.

원래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막상 내 앞에 닥치니까
가슴 한쪽이 뚝 뜯겨나간 것 같았다.

그 뒤에 엄마가 또 물었다.

“이번에 오면 며칠 있을 거냐?”

나는 말했다.

“안 자고 갈게.
사인만 하고 바로 올라올게.”

엄마도 더는 묻지 않았다.

전화 끊고 나서
나는 소파에 한참 앉아 있었다.

울지도 않았고,
화를 내지도 않았다.

안 슬픈 게 아니었다.

너무 답답해서
말이 안 나오는 슬픔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딸이라는 이유로,
도대체 어디까지 이해해야 철든 딸이 되는 걸까.

집은 동생한테 가도 나는 다투면 안 되고,
내가 낸 돈은 다시 말하면 안 되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는 또 모른 척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엄마니까.

그 한마디가
내 마음속 억울함을 전부 막아버린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그렇다.

겉으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속까지 정말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특히 어느 순간
이걸 똑똑히 보게 되면 더 그렇다.

한 가족 안에서도
처음부터 자리가 다 정해져 있었다는 것.

아들은 재산을 받는 사람이고,
딸은 이해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

사람 마음을 제일 차갑게 만드는 건
바로 그 부분이다.

내일 나는 그래도 내려가서 사인할 거다.

사인해야 할 건 하겠다.

다만 그 사인을 하고 나면
나도 이제는 확실히 알게 될 것 같다.

어떤 편애는
참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어떤 자리는
내가 계속 내어준다고 해서
끝내 공평해지는 것도 아니다.

나라면 어떻게 할 것 같아?

① 사인한다 — 아무리 서운해도 엄마는 엄마니까
② 사인 안 한다 — 집은 아들이 받고, 부모 일은 딸한테 기대는 건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