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한 설교:
우리는 사람들이 감격하여
설교자에게 "은혜 많이 받았다" 하면
성공한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언변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설교란 말이야,
목회에 성공하려면 말이야,
나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도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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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말 성공한 설교는
어쩌면 둘 중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무너지는
베드로의 설교이거나,
마음에 찔려
도리어 돌을 들어 죽이려 하는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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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말했습니다(행 2:37).
여기서 "마음에 찔려"는
κατενύγησαν τὴν καρδίαν입니다.
마음 한쪽이 조금 움직인 정도가 아닙니다.
속이 깊이 찔려
이전처럼 버틸 수 없게 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τί ποιήσωμεν,
곧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입니다(행 2:37).
좋은 말 잘 들었다는 반응이 아니라,
이제는 돌이켜야겠다는 반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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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도
역시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런데 방향은 전혀 달랐습니다.
행 7:54의 "마음에 찔려"는
διεπρίοντο ταῖς καρδίαις입니다.
이 표현은 훨씬 거칩니다.
마음이 베이고 갈라지는 듯한,
격한 반발과 분노가 실린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갈았고(행 7:54),
마침내 스데반을 향해 달려들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행 7: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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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의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하나는 회개로 나아갔고,
하나는 분노로 치달았습니다.
그런데 둘 다
말씀이 사람의 중심을 건드렸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저 감탄하고 지나간 것이 아니라,
심장이 찔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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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설교의 성공을
사람들이 얼마나 감동했는지,
얼마나 은혜 받았다고 말했는지,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로만 판단하는 것은
너무 얕습니다.
사람은 자기를 거의 건드리지 않는 말에도
얼마든지 은혜 받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표현이 좋고,
예화가 부드럽고,
분위기가 따뜻하면
그런 반응은 충분히 나옵니다.
그 자체가 다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위로는 분명 필요합니다.
복음은 상한 자를 살피고
넘어진 자를 일으킵니다.
하지만 말씀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참된 설교는 위로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하나님 앞에 세우고,
찔리게 하고,
돌이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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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설교는
사람들이 듣기 좋아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 앞에서 무너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도
대중의 호응을 얻었기 때문에 귀한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굽히지 않았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한 설교는 회개를 낳았고,
한 설교는 박해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둘 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데 머물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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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정말 두려운 설교는
사람들이 화를 내는 설교가 아니라,
아무도 어찌할 바를 모르지 않는 설교일지 모릅니다.
듣고 나서도
삶은 그대로이고,
죄도 그대로이고,
양심도 그대로인데,
설교자만 또렷이 기억에 남는 설교 말입니다.
그런 설교는
칭찬은 받을 수 있어도,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밀어 올리지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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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정말 바랄 일은
"말씀을 잘하시네요"보다
"우리가 어찌할꼬"에 더 가까울지 모릅니다.
적어도
말씀 앞에서
사람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붙들고
편안히 서 있을 수 없게 되는 것,
거기에 설교의 어떤 진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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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설교자란
사람들이 자신에게 감탄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마음의 상태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 김한원 노트 📓